[더버터] 호주·영국·EU는 플랫폼 기업에 아동보호 책임 묻는다

2024-11-06

초록우산×더버터 공동기획

온라인 세이프티 프로젝트 ② 〈끝〉

호주 정부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주기적으로 ‘숙제’를 낸다. 주제는 ‘어린이의 안전’. 플랫폼에 떠다니는 유해 콘텐츠로부터 미성년 이용자를 보호할 방안을 마련하라는 숙제다. 호주에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면 내달 19일까지 아동보호 계획안을 호주 정부 기관인 온라인안전국(eSafety Commissioner)에 제출해야 한다.

온라인안전국은 지난 9월 인스타그램·틱톡 같은 소셜미디어 기업에 어린이 가입 현황과 기업 차원의 이용 연령 제한 조치 등을 담은 보고서도 요청했다. 기업들이 제출한 보고서는 대중에 공개된다. 2021년 제정된 ‘온라인안전법(Online Safety Act 2021)’에 따라 시행 중인 조치다. 사용자들이 업로드하는 유해 콘텐츠에 대해 플랫폼 기업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다.

호주뿐 아니라 영국·미국·EU 등 주요 국가들은 플랫폼 기업에 아동보호와 관련한 법적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강영은 초록우산 사내변호사는 “영국에서는 아동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는 기업에 벌금을 연수익의 최대 10%까지 물릴 정도로 강력하게 규제한다”고 말했다.

광고수익 vs 아동보호

온라인 플랫폼 기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막대한 광고 이익을 얻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의 어맨다 라풀 교수팀 분석에 따르면,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페이스북·엑스·스냅챗 등 6개 소셜미디어는 2022년에만 18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110억 달러(약 15조원)의 광고 수익을 올렸다. 공동연구자인 브린 오스틴 교수는 “플랫폼 사업자들의 막대한 광고수익은 기업이 청소년 보호를 위한 자율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걸 시사한다”고 말했다.

주요국에서는 기업의 자율규제만으로는 온라인에서 아동을 온전히 보호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관련 법 마련에 나서고 있다. 영국 의회는 지난해 ‘온라인안전법’을 통과시켰고, 2025년 하반기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유해 콘텐츠를 제대로 차단하지 못한 플랫폼 기업에는 최대 1800만 파운드(약 322억원) 또는 전 세계에서 벌어들인 연간 수익의 10% 중 큰 금액을 벌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규제 범위도 넓다. 불법이 아니더라도 아동에게 유해한 콘텐츠는 모두 규제 대상이다. 자살·자해·섭식장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거나 인종·종교·성별·장애에 대한 모욕적 콘텐츠도 제재 대상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7월 ‘아동온라인안전법(KOSA)’과 ‘아동·청소년 온라인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COPPA 2.0)’이 상원을 통과했다. KOSA는 플랫폼 기업이 아동보호를 위해 강력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동·청소년이 원하지 않을 경우 낯선 이용자와의 대화나 콘텐츠 추천 기능을 끌 수 있는 선택권을 제공해야 한다. COPPA 2.0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광고를 금지했다. EU는 지난 2월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시행했다. 기업들은 콘텐츠 관리에 관한 연례 보고서를 공개하고, 광고 추천 시스템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글로벌 연 매출의 6%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한국은 사실상 ‘규제 없음’

정부의 강력한 요구에 플랫폼 기업도 솔루션을 내놓고 있다. 애플은 지난달 24일 호주 어린이들이 에어드롭·페이스타임을 통해 원치 않는 유해 이미지나 동영상을 접했을 때 즉시 신고할 수 있는 기능을 도입했다. 발신자 차단, 도움 요청 메시지 기능도 함께 넣었다.

우리나라 정부는 여전히 기업의 자율규제에 맡긴다는 입장이다. 콘텐츠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다. 강영은 변호사는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개발된 알고리즘은 선정적이고 왜곡된 정보를 크게 부풀려 표현하기도 한다”며 “자율규제가 오히려 온라인 안전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온라인 플랫폼은 성착취물 같은 불법 촬영물 유통을 막아야 한다. 다만 음란물, 자살 유도 콘텐츠, 사이버불링 등 불법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유해 콘텐츠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기업이 유해 콘텐츠를 방치해도 현황을 공개하거나 벌금을 부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정책 효용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아동권리옹호단체를 중심으로 실효성 있는 법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초록우산은 아동의 온라인 안전 문제 공론화를 위해 ‘온라인 세이프티(Online Safety)’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서명운동을 펼치면서, 당사자의 목소리가 법안에 반영될 수 있도록 아동·청소년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 초록우산아동권리옹호단원인 손예원(12) 양은 “어린이들이 온라인에서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많은 사람이 알아야 대책도 나올 수 있다”며 “어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록우산은 공익변호사들과 함께 해외 사례 연구,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초안 작성 등 체계적인 법안 마련을 위한 작업도 추진 중이다. 초록우산이 제시하는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아동·청소년 유해 정보’ 개념 신설 ▶청소년보호책임자 업무 확대 및 수행결과 공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아동·청소년 보호의무 도입 ▶정보통신서비스 위험평가 의무 도입 등이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은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안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고 아이들을 위한 안전망 구축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법과 제도의 개선, 기업들의 자발적인 노력, 국민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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