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정 협의체의 성패를 가를 최대 변수는 전공의들의 동참 여부다. 그러나 사태의 핵심 당사자인 전공의들은 협의체 출범에도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무의미하다’고 평가했고, 일반 전공의 역시 협의체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현장에서는 전공의 미복귀를 염두에 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 “여야의정 협의체, 무의미”
야당과 전공의 단체 없이 여·야·의·정 협의체가 출범한 11일 전공의는 협의체를 통한 사태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협의체 출범에 대해 “무의미”라고 평가했다.
박 위원장은 “국민의힘 한동훈 당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여전히 내년도 의대 증원을 되돌려야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광역자치단체 소재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A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전공의가 협의체 들어가지 안았기 때문에 협의체 활동도 의미가 없다”며 “내년 의대증원 ‘0’ 내후년 ‘0’으로 돌리는 것 아니면 전공의들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전환과 협의체 출범이 맞물리면서 비대위가 전공의들과 함께 협의체에 동참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나오긴 하지만 낙관하기 어렵다. 또 다른 전공의 B씨는 “의협 회장 탄핵으로 새 집행부와 함께 대화할 수도 있다는데, 방향이 맞지 않으면 의협과 바로 갈라질 것”이라며 “대전협은 강경파가 우세한 상황이고, 강경파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가 모여있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도 협의체 출범은 화제가 되지 않았다. 아예 언급을 하지 않거나, 관련 기사가 공유되더라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몇몇 전공의가 협의체에 참가한 의료 단체를 두고 정치적인 행보라며 비판하는 수준에 그쳤다. 사직 전공의 C씨는 “이미 돌아가려는 사람은 다 돌아갔고, 이런 분위기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는 더 힘들 것”이라며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 깊어지고, 집단의 분노도 전보다 더 쌓였다”고 말했다.
“전공의 없는 의료 현장 준비해야”
전문가들은 전공의 미복귀를 감안한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현장 인력 부족으로 인한 간호사 업무가 과중되는 상황에서 대형병원에서는 여전히 경증 외래환자 진료를 보고 있다”며 “전공의가 복귀와 무관하게 병원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승준 교수(한양대 의대·경실련 보건의료위원)는 “의료 정상화는 전공의 복귀가 아니라 환자가 신속하게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전공의가 없어도 진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의료 시스템을 재정비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