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깊어졌다. 은행잎은 노랗게 물들어 길 위에 수북이 쌓였고,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으나 쌀쌀해진 날씨는 옷깃을 다시 여미게 한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불린다. 그러나 이 말은 이제 실감 나게 들리지 않는다. 오늘날 독서는 시민들의 생활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년간 취미 독서가 40% 감소했고, 독서의 나라 영국에서도 성인 3명 중 1명 이상이 독서를 포기했다고 한다. 어린이 독서량은 더 빠르게 줄고 있다. 영국의 ‘국가문해력재단(National Literacy Trust)’에 의하면 읽기를 즐긴다고 답한 어린이의 비율은 2005년의 43%에서 2023년 28%로 떨어졌다. 1976년 미국 고교 졸업반 학생들의 40%가 전년도에 6권 이상의 책을 취미로 읽었다고 답한 데 반해 2022년에는 이 비율이 11%로 줄었다. 원래 책을 잘 읽지 않는 우리 국민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세상의 미래를 위해 어두운 경고음이다.
독서혁명이 근대 문명을 열어 와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독서습관
미래 세상에 대한 또 하나의 위협
가을 캠페인이 독서습관 지켜주길
15세기 중엽 인쇄기가 발명된 후 처음 몇 세기 동안 독서는 대체로 특수층들의 전유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700년대 초에 이르러 교육의 확대와 인쇄물의 폭발적 증가로 독서가 대중들에게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를 ‘독서혁명’이라 부른다. 이 혁명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총성 하나 없이 정치·사회 체제의 변혁을 가져왔다. 역사학자들은 18세기 독서혁명이 계몽주의, 민주주의, 산업혁명을 가져왔다고 본다. 독서를 통해 대중들에게 퍼져나간 지식의 민주화는 결국 당시 귀족, 전제 왕정, 특권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키우고 유럽을 민주사회로 나아가게 했다. 계몽주의 철학자, 사상가들은 중산층 독자층의 지지를 받으며 보편적 인권, 자유, 평등, 근대민주주의의 기본체계를 엮어갔다. 대중들이 신문, 잡지, 역사, 철학, 과학, 문학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하며 사물에 대한 이해 증진, 미신 배격, 논리적 사고력을 쌓으면서 결국 민주주의, 과학기술 발전, 산업혁명, 자본주의라는 현대문명의 길을 열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독서는 죽어가고 있다. 이의 가장 큰 요인은 2010년대 중반부터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스마트폰이다. 모바일 인터넷은 극도의 중독성을 가져 오늘날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하루 7시간을 노트북이나 휴대폰의 스크린을 보며 지내고, Z세대의 경우에는 9시간에 달한다고 한다. 짧은 동영상, 컴퓨터 게임, 중독성 있는 알고리즘의 세계에서 대중들은 집중력과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판단력, 논리적 사고를 잃어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PISA) 조사를 보면 2010년대 중반 이후 학생들의 수리, 언어, 과학 능력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독서는 책에 보존된 방대하고 귀중한 지식의 창고에 계층과 남녀노소를 떠나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해주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저자의 지혜와 지식을 독자에게 이어준다. 책은 저자의 오랜 시간을 통한 숙고와 수정, 검증을 거친 생각을 소리 지르지 않고 배경음악도 없이 비판적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게 된다. 반면 유튜브 동영상은 훨씬 피상적이며 단편적이고 감성적 호소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려 한다.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당대의 쟁점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토론할 수 있는 비판적이며 합리적 시민들을 전제로 한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정치적 담론이 점점 증오, 분노, 선동으로 흐르고, 포퓰리스트 정치와 극우정당이 득세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생각을 책이 아닌 영상이 지배해 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AI·디지털 혁명은 인간의 삶에 많은 편리함과 효율성을 가져다주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 간의 소통방식, 언론환경과 지식전달 체계를 바꾸며 일반시민들의 사고 능력을 제한하고, 이를 주도하는 극히 소수의 개발자, 과학자, 자본가와 절대다수 대중들의 격차를 넓혀 점점 중세와 같은 지식의 독점화와 특권적 사회지배 구조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근대문명의 흐름을 이끈 지도자, 발명가, 과학자, 예술가들의 공통적 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독서’라고 한다. 링컨, 처칠, 애틀리 모두 독서광들이었고, 다윈, 에디슨,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였다. 빌 게이츠도 다독가이며, 최근 일론 머스크조차 자신이 “책에 의해 길러졌다”고 주장한다.
세계의 미래는 빈부 격차 심화, 민주주의의 퇴보, 미·중 갈등 심화, 다자주의 질서 해체 등 위협적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대중들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독서의 습관도 이에 못지않은 위협이다. 이 추세를 되돌리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스크린 중독에 대한 절제, 광범위한 독서 캠페인, 학교와 부모의 노력으로 이 추세를 약화시켜 나갈 수는 있다. 세계적으로 독서가 죽어가는 이 시대에 이번 가을 독서캠페인이 한국민들의 독서 습관을 지키는 효과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지식 강국이 진정한 선진국이다. 그것은 독서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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