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모든 국가 시스템은 차질없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헌법과 법률시스템이 정상 작동해 정치적 불확실성도 해소될 것입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일 무디스, 스탠다드앤푸어스(S&P), 피치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 3사 관계자와의 화상면담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후 위기를 맞은 한국 경제에 신뢰를 보내달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지난달 13일 화상면담 이후 약 한 달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기획재정부는 대외신인도 관리를 올해 경제정책방향 핵심 내용으로 설정했습니다. 해외투자기관 등을 대상으로 컨퍼런스를 열기도 했습니다. 정국 혼란기에 정부가 공들이는 대외신인도. 누가 어떻게 평가하는 것인지, 그 영향력은 얼마나 되는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대외신인도를 평가하는 대표적 척도는 국가신용등급입니다. 개인의 신용을 평가하듯 신용평가사가 국가의 재정 등을 바탕으로 신용도를 평가하는 것인데요. 무디스 등 3대 글로벌 신용평가사가 전체 국제 신용평가시장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가신용등급은 20여개 등급으로 세분돼 있습니다. S&P는 투자적격 등급(AAA~BBB-), 투자주의 등급(BB+~CCC-), 투자부적격 등급(CC~D) 등 총 23개 등급으로 분류해 신용을 평가합니다. 여기에 ‘안정적’ ‘부정적’ 이라는 전망도 덧붙입니다. 최상위인 AAA 등급은 호주, 캐나다, 스웨덴, 스위스 등 10여개 국가가 포함됩니다. 한국은 세 번째로 높은 단계인 AA등급입니다. 영국과 같고, 중국·일본(A+)보다는 2단계 높습니다.
평가 기준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경제성장률과 안정성, 재정건전성 및 국가부채 수준, 보유 외환과 국채발행량·국제 수지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설명합니다. 정치적 상황 등 정량적 요소도 함께 평가하는데요. 무디스가 지난해 12월 내각 불신임안 통과 등 정국 혼란을 이유로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Aa2에서 Aa3으로 강등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다만 평가 기준이 100%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다보니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세 기관의 평가는 과거 한국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에도 권위나 영향력이 컸다”면서 “이들은 ‘국가가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있는지’ ‘주요 기업이 파산하지는 않을지’를 제일 중점적으로 본다”고 했다.
3대 신용평가사는 민간기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왜 국가가 이들의 평가에 목매는 걸까요. 바로 국가신용등급이 국채 등급을 매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돈을 빌릴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신용등급이 낮으면 국채 금리를 높여야 투자자를 모을 수 있습니다. 같은 돈을 빌려도 더 많은 이자를 내야 하는 셈이죠.
민간 영역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국가신용등급은 기업신용등급과도 직결되기 때문인데요. 통상 국가신용등급이 기업신용등급의 상단으로 정해집니다. 예를 들어 국가신용등급이 AA라면 기업신용등급은 AA보다 낮은 AA- 이하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탓에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기업신용등급도 바로 강등되는 ‘연쇄작용’이 벌어지게 됩니다. 개인도 영향을 안 받을 수 없겠죠. 금융기관이 낮아진 신용도로 인한 리스크 관리에 나서면서 대출한도 축소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등급은 한 번 내려가면 회복이 쉽지 않습니다. 1997년 무디스는 불과 2개월 만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B+로 9단계나 낮췄습니다. 한국은 2001년 IMF의 구제금융 조치를 졸업했지만, IMF 직전 수준(AA-)으로 신용등급이 회복된 건 2015년입니다. S&P는 2011년 부채한도 상향 문제가 불거진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춘 후 지금까지 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국가신용등급 하향으로 기업신용등급이 해외 투자자들의 투자기준 밑으로 줄줄이 강등될 수 있다. 해외투자자들이 주식을 다 팔면 주식·외환시장이 크게 출렁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간 한국의 신용등급 수준은 양호했습니다. S&P는 2016년 이후 AA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무디스도 2015년 말 등급을 Aa2로 올린 뒤 변동이 없습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도 신용등급에는 영향이 없었던 셈입니다.
또다시 탄핵 정국을 맞은 현 상황은 어떨까요. 당장 ‘빨간불’이 들어오진 않은 것 같습니다. 국가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0.04%포인트 올라 2016년 탄핵 정국 때(0.14%포인트)보다 폭이 작습니다. 외화보유고도 지난해 말 기준 4156억 달러로 집계돼 ‘심리적 마지노선’인 4000억달러 선을 지켰습니다.
다만 탄핵정국이 장기화할 경우에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3대 글로벌 신용평가사 지난 9일 최 권한대행과의 면담에서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외국인 투자 또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앞서 피치도 “정치적 위기가 장기화해 재정이 악화될 경우 신용등급 하방 위험이 증가힐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구요.
전 교수는 “신용평가사 발언의 행간에 정치적 불확실성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는 불만이 들어 있을 것”이라며 “정치적 불확실성은 경제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탄핵 정국을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