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전문의 자격시험에 556명이 응시하자 전공의들은 “의료현장에 돌아간 약 1000명 중 절반이 ‘졸국(의국 졸업) 연차‘ 라는 게 숫자로 확인된 것”이란 담담한 반응이다. 현재 전공의 전체(1만 3531명) 가운데 수련 병원 출근자는 1174명이다. “원래 그런 것”이라고 답하지만 3·4년차 레지던트 상당수가 원래 진로 계획에 따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면서 내년 상반기 전공의 모집 지원 여부를 가늠하고 있는 전공의들의 고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20일 대한의학회·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2일 제68차(2025년) 전문의 자격시험엔 566명이 지원했다. 2024년 응시자(2782명)의 1/5 수준(20.3%)이지만 대다수 전공의가 의료 현장을 떠난 상황에 비추어보면 “결코 적지 않은 숫자”란 평가다. 이른바 필수의료 과목으로 불리는 내과 응시자가 106명, 외과 18명, 산부인과 13명, 소아청소년과 24명, 응급의학과 30명이다.
지난 2월 전공의 이탈 사태에도 졸국을 앞둔 3·4년차 레지던트 다수가 전문의 자격시험에 응시한 결과다. 졸국이란 의국을 졸업한다는 뜻으로 수년간의 인턴(수련의)과 레지던트(전공의) 생활을 마쳤다는 의미다. 이번 응시자의 대부분도 내년 2월 전공의 수련을 마칠 예정이며, 80명은 지난 9월 수련이 끝났다.
이번 전문의 자격시험에 응시한 이들은 의대 입학 부터 보드(전문의 자격·board)를 따기 위해 약 10년의 시간을 투자했다. 전문의는 통상 의대 졸업 후 의사 국가고시만 합격한 일반의보다 연평균 임금이 약 1억 원 높다. 전문성을 그만큼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의대 교수들 사이에선 내년 상반기 전공의 모집 때 전공의 일부가 더 복귀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의정갈등 속 전문의를 딴 이들이 생기면서 이탈한 전공의들도 복귀할 생각이 늘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직 전공의는 “졸국 연차인데. 왜 나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나이도 있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동네 의원에서 봉직의로 취직한 저연차 사직 전공의는 "병원 근무 때보다 훨씬 편하지만 급여가 너무 적다. 또 환자를 보다가 이게 맞나 싶을 때가 있는데, 의견을 구할 사람이 없어 불안할 때가 많다"라며 "돌아가서 수련을 마칠 수 있게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사직 전공의는 "이제 각자도생하는 분위기가 되어가는 것 같다"라며 "자리가 사라지는건 아닐까 솔직히 걱정스럽다"라고 했다.
관건은 내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심의기구인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이르면 다음달 내년 수련병원에서 근무할 인턴과 레지던트 1년차를 모집하는 ‘2025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 시행 계획’을 공고할 계획이다.
하지만 3·4년차 레지던트를 포함해도 대다수 전공의는 여전히 복귀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지난 2월 수련병원 이탈 전까지 내과 레지던트로 일한 전공의는 “보드 따려고 고생한 건 맞지만 그럼에도 병원을 뛰쳐나온 이유는 ‘이대론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을 수용하면 의사면허뿐만 아니라 전문의 자격의 가치도 떨어진다는 시각이 많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전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기존 요구사항인 ‘증원 백지화’를 넘어 ‘내년도 모집 정지’를 요구한 만큼 의료공백 사태가 내년까지 해결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난 상황에서 내년도 의대 신입생을 한 명도 뽑지 말라는 건 비현실적이란 지적이다.
의협 비대위는 오는 21일 오후 첫 회의를 열고 여야의정협의체 참여·2025~2026년 의대 증원 대응 등 대정부 투쟁 방향을 논의한다. 이날 회의에는 비대위원은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을 포함한 대전협 추천위원 3명, 의대생 단체 추천 위원 3명이 참여해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목소리가 담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