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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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전해지는 안타까운 사건사고 소식과 얼어붙은 경제는 어느 때보다도 우리 사회에 위로와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긴 터널 끝엔 빛이 있고, 끝날 것 같지 않은 겨울이 지나니 어느새 봄도 찾아왔다. 삶에 지쳐 인생을 버텨내고 있는 이들에게 때로 책 한 권이 더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를 건네는 마음 따뜻한 노시인의 이야기부터 작은 안식처를 그려낸 소설까지 만나본다.
■ 마흔에게

“그대 비록 힘겹고 비틀거릴지라도 아름다워라. 누군가의 인생이여, 사랑과 더불어 한없이 작아지고 누추해지겠지만 턱없이 그윽해지고 깊어지고 향기로워질 일이다.” (나태주作 ‘마흔에게’ 중)
어디에도 미혹되지 않고, 세상일에 정신을 뺏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를 ‘불혹(不惑)’이라 부른다. 하지만 마흔 줄에 접어든 이들은 “사실 나는 여전히 흔들리는 존재”라고 고백한다. 가정, 학교, 직장, 사회 어디에선가 자신의 몫보다 무거운 삶의 무게를 얹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비단 마흔만의 이야기는 아닐 테다.
나태주 시인은 어른에게도 격려는 필요하며, 위로받고 싶은 어른이 필요함을 알고 있다. 지난 2월, 올해 나이 만 80세를 맞이한 노시인은 자신의 인생 절반쯤을 지나온 이들에게 앞서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의지가 될 수 있는 산문집을 펼쳐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봐야 사랑스러우며 너 또한 그렇다’고 말하는 시인은 자신의 대표작 소재이기도 한 ‘풀꽃’을 떠올리며 “나 자신도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뽑힐 수 있는 잡초”였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가끔은 스스로에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어보라”고 말하고, “인생에서 길을 잘못 들었거나 실패했다고 생각할 때 당신이 잘못 든 그 길이 새로운 길이 될 수도 있다”며 멈추지 말고, 조금씩만 앞으로 나아가보자고 용기를 불어넣는다.
■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어린 시절 우리에겐 각자만의 비밀 장소가 하나씩 있었다. 이불과 베개로 쌓아올린 엉성한 ‘아지트’에서 친구와 그 안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즐겁고 행복했던 것처럼 말이다.
황보름 작가의 장편소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저마다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어느 조그마한 서점에 모여들며 잠시나마 휴식을 갖고, 서로를 위로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소설은 뮤지컬로도 재탄생해 지난 1일부터 대학로에서 관객과 만나며 ‘따뜻함과 힐링의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또한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으며 지난해 일본 서점대상 1위(번역소설부문)를 수상했다. 황 작가는 당시 수상소감을 통해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마음이 흔들릴 때 소설을 쓰지 시작했다”며 “세상이 주목하는 자리에서 물러난 인물들을 통해 어느 길로 가든 삶을 이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휴남동 서점엔 흔히 말하는 경로를 이탈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아픔을 겪고 모든 것을 정리한 채 이곳에 정착했지만 때때로 눈물을 흘리는 서점 주인 영주부터 끝없는 구직 실패에 취업을 포기한 민준, 사는 게 아무런 재미가 없다는 고등학생 민철 등 이들은 그곳에서 각자만의 배려와 연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담백한 우정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희망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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