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철씨(66)는 1994년, 서른여섯의 나이로 장례지도사 일을 시작했다. 돌아가신 분을 정돈해 보내드리는 일이 ‘염사’라고 불리며 천대받던 시절이었다. 31년 한 길을 걸은 그에겐 ‘대통령 염장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고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등 전직 대통령 6명의 장례를 직접 치르면서다. 스님의 다비식을 비롯한 옛 장례 절차를 연구하며 대한민국 전통장례명장 1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유씨는 편견이 다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지레 장례지도사가 평소에도 ‘우울할 것’이라 생각한다. 유씨는 태어나길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왜 이렇게 웃으면서 죽음을 말하시냐”는 얘기를 왕왕 듣는다. “죽음을 다루지만, 그곳은 우리에게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는 그는 “저희가 내내 울 수는 없지 않냐”고 되묻는다.

김새별씨(50)도 비슷한 시기에 장례지도사 일에 들어섰다. 일을 갓 시작한 스물둘의 청년에게 주위에선 “결혼할 때 처가에 뭐라고 하려고 이 일을 시작했냐”고들 말했단다. 10년 넘게 장례지도사 일을 하던 어느 날 한 유가족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김씨에게 유품 정리를 부탁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2007년부터 ‘유품정리사’라는 새로운 업을 시작했다.
김씨는 주로 특수 청소가 필요한 고독사 현장을 맡는다. “저희는 유품정리사입니다. 안전하고 좋은 곳으로 모셔드리겠습니다.” 쓸쓸히 떠난 이들의 넋을 달래듯, 김씨는 정리를 시작하기 전 묵념하며 이렇게 말한다. 사회에 고립된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
1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숨>은 두 사람과 폐지를 주으며 살아가는 문인산씨, 세 사람을 주인공으로 삶과 죽음을 논한다. 윤재호 감독은 2021년부터 2년간 유씨와 김씨가 일하는 현장을 찾았다. 유가족의 동의를 거쳐 고인을 염습하는 모습, 스님의 다비식, 고독사 특수청소 현장 등이 카메라에 담겼다. 이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묵묵히 일하고, 일상을 살아간다. 경향신문은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유씨와 김씨를 만나 이들이 영화에 기꺼이 출연한 이유를 들었다.

“이 직업이 얼마나 소중한 직업인지, 제대로 알리고 싶었어요.” 유씨가 말문을 텄다. 그는 이날 일부러 장지에서 입는 검정 양복을 갖춰 입고 인터뷰에 임했다. 조의를 표하기 위한 검정 넥타이만 색깔 있는 것으로 바꿔 맸다고 했다. 김씨는 자기 일을 스스로 귀히 여기는 유씨에게 존경을 표했다. “어디 가서 장례지도사 일을 한다고 말하길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거든요. 선생님같이 양복 딱 차려입고 이 일을 알리는 분은 잘 없어요. 멋있는 분이죠.”
유씨는 영화에서 김씨가 방 안을 청소하던 장면을 인상 깊게 봤다고 했다. 스크린에 다 전해지지 않지만, 사람의 몸이 부패한 냄새가 얼마나 독한지를 촬영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로부터 전해 들었기에 “고생한다”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고 했다. 김씨는 “초나 향을 피워도 소용없는 정도의 냄새”라고 덤덤히 말했다. 그러면서 “집을 깨끗이 청소해내면서도, 떠난 분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예를 갖추며 성의껏 유품을 정리한다”고 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불시에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평소에 ‘잘 죽는 것’을 생각하고 사는 이는 적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유씨는 “죽음 앞에서 스스로 정리가 되지 않은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는 영화를 촬영하며 임종이 가까워지면 연명의료를 중단하겠다는 내용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딸에게는 자신의 장례식에서 “가수 이장희의 노래를 틀어달라”고 일러두기도 했다.
김씨는 반대로 유품정리사 일을 하며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거듭한다고 했다. 그는 일하지 않는 시간 대부분을 가족과 보낸다고 한다. “날마다 성실하게, 즐거운 추억을 쌓으려고 생각하고 삽니다.” 그가 말했다. 그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는 주위 사람들과 최대한 좋은 것들을 나누며 헤어질 준비를 하지 않겠냐”며 “30년쯤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죽음을 인지하면서 살면, 살아 있는 지금을 오히려 감사히 여길 수 있다는 역설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들은 ‘불길한 것’이 아닌 ‘필연적인 것’인 죽음을 논하는 영화 <숨>을 통해 관객들이 “오늘의 소중함을 되새겨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