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중의 북트렌드] (113) 숨 쉬는 동안 희망은 있다

2025-03-18

 작년 12월 29일, 가족들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TV에서는 무안공항 제주항공 사고 소식이 흘러나왔다. 순간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에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외삼촌과 외숙모님이 그 비행기에 타고 계셨다.

 어머니에겐 누구보다 소중한 동생이었다. 재작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늘 곁에서 힘이 되어주던 분이셨기에 충격과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뉴스에서 보며 안타까워했던 사고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무안공항을 여러 차례 오가며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장례 절차를 모두 치른 후에도 가슴이 먹먹했다.

 그 일은 필자에게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문밖을 나서는 행위가 더는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삶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즈음 한 권의 책을 펼쳤다.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이호 교수는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이자, 30년 넘게 부검을 해온 법의학자다. 매일 주검을 마주하며 죽음과 삶에 대해 깨달은 내용을 솔직하게 담아낸 책이다.

 아침 9시, 저자의 하루는 부검실에서 시작된다. 그의 역할은 단순히 사망 원인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죽음의 육하원칙을 완성하는 사람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죽음을 맞이했는지를 기록하는 것. 떠나간 사람을 위한 일이면서, 남아 있는 우리가 삶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저자는 말한다.

 “사람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아는 것이 삶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라면, 사람이 어떻게 떠나는지를 아는 것은 삶을 완성하는 과정이다.”

 책은 죽음을 단순한 끝이 아니라, 삶을 비춰보는 거울로 바라본다. 우리는 가족과 함께하는 평범한 식사, 친구와 나누는 작은 대화, 아침에 눈을 뜨는 그 순간마저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저자는 묻는다.

 “이렇게 살아 있는 삶이 오히려 신기하지 않은가?”

 죽음을 배운다는 것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과정이다. 죽음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히 바라보는 것. 그렇기에 이 책은 무겁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다. 곳곳에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갑작스럽게 아홉 살 딸을 잃은 부모에게, 저자는 이렇게 애도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이겠지만, 그 아이가 부모님께 주었던 보석 같은 추억들이 퇴색하지 않을 정도로만 슬퍼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말속에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죽음을 마주하는 법,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가 담겨 있었다.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저자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한 권 한 권 사인을 하며 책 한쪽에 이렇게 적었다.

 Dum spiro, spero.

 “숨 쉬는 동안, 희망은 존재한다.”

 이 문장을 곱씹었다. 숨 쉬는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있을까? 일상은 영원하지 않기에 더 빛난다. 작은 감사와 배려,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 결국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이런 순간들이 아닐까.

 “숨 쉬는 이 순간, 우리는 어떤 희망을 품고 있는가?“

 글 = 조석중 (독서경영 전문가)

 소개도서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수업》 (이호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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