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계의 에르메스’를 몰라보다니?!

2025-05-10

버터는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풍미와 기능에 따라 소비자의 취향을 좌우한다. 지난달 초, 서울 강남구 한 레스토랑에서 국내 시판 중인 고급 버터 10종을 대상으로 한 블라인드 시식회가 열렸다.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하거나 제과제빵 업계 종사자 등 버터에 관심이 많은 25명이 참석했다.

버터, 브랜드보다 내 취향

이날 테이블에 오른 버터는 모두 10가지다. 라콩비에트, 레스큐어, 에쉬레, 엘&비르, 이즈니 생메르, 이즈니 코탕탱, 앵커, 팡플리, 페이장 브르통, 프레지덩의 무염 버터가 시식 대상이다. 이 중 앵커(뉴질랜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프랑스 제품이다.

“라콩비에트가 제일 비싸니 가장 맛있지 않을까요?” “저는 매장에서 레스큐어를 많이 쓰는 편인데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어떨지 궁금해요.” “에쉬레하고 라콩비에트가 ‘버터계의 에르메스’라고 들었는데….”

넓적한 둥근 접시에는 버터 10조각이 놓여 있었다. 좀 더 짙은 노란빛을 내거나 혹은 흰색에 가까운 색깔의 정도 차이 외에는 어떤 제품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참가자들은 중간중간 물을 마시면서 차례로 버터를 음미하고 맛의 특징과 나름의 순위를 매겼다. 한 차례 평가가 끝난 뒤엔 준비된 크래커와 함께 버터를 발라 맛보며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3, 4번 버터가 가장 좋았어요. 3번은 직관적인 고소함이 강하게 느껴졌고 4번은 산뜻한 뒷맛의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9번 버터의 새콤한 듯한 감칠맛이 마음에 들어요. 6번 버터는 풀향이 느껴지는데 이건 호불호가 갈릴 것 같습니다.”

참가자들의 시식 감상평 발표가 이어졌다. ‘○번이 ○○버터 같다’는 추측도 나왔다. 저마다 최고로 꼽은 2~3종을 집계하자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상위권 4종 버터가 다음과 같이 나왔다. 1위 프레지덩, 2위 이즈니 생메르, 3위 엘&비르, 4위 페이장 브르통.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띠는 참가자도 있었고 의외라는 듯 갸웃거리는 이도 있었다. 이게 뭐라고. 개인적으로 맛있다고 꼽았던 버터가 하위권에 머무르자 괜히 의기소침해졌다. 그런 마음들을 읽었는지 이날 시식회를 진행한 김예지 파티셰(뵈르 누아제르 운영)는 “맛이나 풍미에 관한 평가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므로 이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20차례 이상 버터 시식회를 진행했다는 김 파티셰에게 “그래도 그동안 1등을 많이 한 버터가 궁금하다”고 묻자 그는 “이즈니 생메르나 페이장 브르통 두 제품이 참가자들의 호평을 많이 받은 편”이라고 답변했다.

빵에 발라 먹는 용도로는 가염 버터가 적합하고 요리나 베이킹용으로는 무염 버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김 파티셰는 “특히 베이킹용으로 버터를 고를 때는 작업성도 고려하라”고 조언한다.

작업성은 녹는 온도가 높고 쉽게 물러지지 않는 성질로, 페이스트리 반죽과 같은 정교한 작업을 할 때 도움이 된다.

우유에서 지방을 분리해 만드는 버터는 1㎏을 얻기 위해서는 우유 22ℓ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유지방 함량이 80% 이상이면 천연 버터, 80% 미만이면 가공 버터로 분류된다. 마트 매대에 ‘버터’라고 표기되어 있어도 같은 버터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가공 버터는 유지방 외에 야자경화유 등 식물성유지와 고형분 등 각종 첨가물이 포함되어 있다. 포장재 뒷면을 살펴보면 천연 버터는 ‘버터’, 가공 버터는 ‘가공 버터’라고 표기되어 있으므로 구입할 때 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버터에도 ‘유행’이 있다

버터 매장에서는 한동안 ‘고메버터’(gourmet butter)라는 용어도 많이 사용됐다. 말 그대로 미식적인 버터라는 뜻인데 품질이나 특징을 담보하는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다. 풍미가 진하고 맛있는 버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일종의 마케팅 용어로 보면 된다.

버터를 보관할 때는 특히 포장에 신경을 써야 한다. 다른 냄새를 잘 흡수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여러 가지 음식물 냄새가 뒤섞여 있는 냉장고에 잘못 보관했다간 냉장고 냄새 밴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오래 보관하려면 냉동 보관을 해도 괜찮은데, 이 역시 냄새가 배지 않도록 꼼꼼하게 포장하고 밀폐용기에 담는 것이 좋다.

디저트 카페나 전문 매장에선 버터를 활용해 풍미와 맛을 높인 콤파운드 버터나 휩버터(whipped butter)를 만날 수 있다. 콤파운드 버터는 기존의 천연 버터를 녹여 허브나 꿀, 마늘, 향신료 등을 혼합해 만든 것으로 다양한 맛을 풍부하게 즐길 수 있어 인기가 많다. 버터에 레몬과 허브의 일종인 딜을 섞어 만든 레몬딜버터는 대표적인 콤파운드 버터로, 수년 전부터 콤파운드 버터의 유행을 이끈 아이템이다. 여러 부재료를 넣어 즐기는 크림치즈처럼 해조 버터, 토마토 버터 등 감각적인 콤파운드 버터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버터를 저어 부풀려 만든 휩버터는 생크림과 버터 중간의 부드러운 질감을 내는 버터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명물인 카페 아틀리에 셉템버가 만들어 내놓으면서 세계적으로 퍼지게 됐다. 맛도 맛이지만 소위 ‘인스타그래머블’한 외양이 인기에 불을 지폈다.

앞서 언급한 버터 중 에쉬레 버터는 일본 작가 유즈키 아사코의 소설 <버터>에 등장하면서 관심을 끌었다. 뛰어난 요리 솜씨를 지닌, 연쇄 살인 혐의로 구속된 주인공의 영혼을 사로잡은 버터로 이 에쉬레 버터가 소개된다. 최근 ‘버터계의 ○○’라고 불리는 명품 버터가 여럿 있지만 프랑스 음식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꼭 한번은 맛볼 것을 추천하는 고급 버터로 꼽히는 것은 르 퐁클레, 보르디에, 마리안느 캉탕 등이 있다.

고급 브랜드화된 버터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이번 시식회처럼 실제 소비자의 취향은 의외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시식회를 마련한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는 “자신의 취향을 알고 그에 따른 선택과 소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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