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임 국방부 장관님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사기획관만 단순 교체는 의미가 없습니다. 수십 년 간 국방부의 핵심 조직인 인사기획관(총괄하는 인사기획관리과) 자리를 육군사관학교 출신만 차지하는 카르텔을 깨야 합니다”
국방부 조직의 오랜 폐단을 꼽는다면 무엇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군 당국 관계자로부터 되돌아온 답변이다. 국방부가 ‘육방부’로 불리는 것은 이 같은 이유라며 육군 가운데서 지난해 12·3 비상계엄을 주도한 육사 출신이 국방부 인사 조직을 장악해 육군, 해군, 공군 간 3군의 균형 인사가 묵살되고 있다고 성토한 것이다.
이런 지적은 감사원이 올해 3월 공개한 ‘국방부 정기감사 결과 보고서’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국방부는 2009년 국방부 본부 내 한시편제를 운영할 수 있도록 ‘국방조직 및 정원 관리 훈령’을 개정해 행정안전부 협의 없이 군인 정원을 초과 운영했다. 또 국방조직훈령에 한시기구를 운영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운영해 오다가 ‘한시기구’ 외에 행정기관통칙상의 한시 정원과 유사한 ‘한시편제’를 설치할 수 있도록 훈령을 개정했다.
이 결과 군인 정원 323명 외에 군인 103명을 한시적 기구를 설치하는 방법으로 직제에 반영하여 운영했다. 또 군인 53명은 한시편제를 설치하는 방법으로 직제에 반영하지 않고 국방부 본부에서 업무를 수행했다. 행정안전부장관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직제 없는 군 인력을 파견 받아 운영할 수 있게 꼼수 행정을 한 것이다.
특히 국방부는 감사원이 수 차례 반복해서 지적해도 16년째 육군 준장(★) 3명을 한시조직인 TF 부서장(국장과 차장 사이 중간관리자 임무 수행하는 ‘차장’ 직위)으로 파견 받아 직제에 근거 없이 직무대리 등 국장(급) 업무를 수행해왔다.
게다가 이들 한시조직 부서장은 임명된 후 각 국의 선임 장교라는 이유로 한시조직 소관 업무의 범위를 벗어나 국장급의 상시 업무 중 일부를 수행하거나 다른 과의 업무를 대면 보고받는 등 꼼수 행정을 부렸다. 눈에 띄는 것은 꼼수 행정 덕분에 국방부에 입성한 이들 대부분은 육사 출신의 육군이라는 대목이다.
‘인사기획관리과’ 수십년간 육사 출신 독점
국방부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2년 국회 국방위원회가 똑같이 언급하고 3군의 균형발전을 국방부가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한 사안으로, 장기간 운영되고 있는 국방부 조직의 폐단으로 꼽힌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같은 국방부의 인사 시스템(육사 출신 독점) 문제는 개선되지 못한 채 오래된 병폐로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인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64년 만에 군 장성 출신이 아닌 문민 출신인 안규백 국방장관이 취임하고 첫 번째 인사로 현역 혹은 예비역 장성이 맡던 국방부 인사기획관에 사상 최초로 일반직 공무원을 임명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1963년 12월 국방부 인사기획관 자리가 신설된 이후 2005년 5월까지는 현역 장성이 맡았고 이후 예비역 장성이 임명됐다. 국방부 장관이 이어 62년 만에 문민 출신의 첫 인사기획관(국장급) 임명이다. 이 보직은 국방부 본부를 비롯해 육·해·공군, 해병대 50만명에 달하는 대군의 인사를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다.
그러나 군 안팎으로 조만간 이뤄질 합참의장을 비롯한 육·해·공군, 해병대 수뇌부 교체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병폐를 개선하려면 줄기만 제거해선 안되고 반드시 뿌리의 원인까지 함께 해결해야 하는데 신임 국방부 장관 취임 이후에도 그렇지 못한 (인사)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뿌리의 원인이 해결되지 못했다는 우려는 국방부 인사기획관 교체 보다 우선적으로 조치해야 할 군의 보직과 진급을 막후에서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인사기획관리과’ 주요 보직을 육사 출신의 육군이 수십 년 간 독점하면서 3군 균형 인사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인사기획관리과장(대령), 인사기획관리과 총괄(중령), 인사기획관리과 부총괄(중령), 장군인사팀장(중령) 자리를 육사 출신만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인사기획관리과장인 김모(육사 56기) 대령, 전임자 수도권 기갑여단 이모(육사 54기) 준장, 인사기획관리과 총괄 이모(육사 60기) 중령, 전임자 수도권 사령부급 행정팀장인 권모(육사 59기) 대령(진), 장군인사팀장인 김모(육사 59기) 대령(진), 스마트인재관리담당인 강모(육사 59기) 대령(진) 등 모두 육사 출신인 것처럼 이들은 비공식 네트워크로 연계돼 국방부 인사 부서의 핵심 자리를 수십 년 간 장악하고 있다.
육군 독점에 ‘국방부’ 아닌 ‘육방부’로 불려
교체된 인사기획관 자리도 육군 인사사령부를 거친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인 전임자 오모(육사 44기) 국장의 면면에서 알 수 있듯이 역시 육사 출신이 독점해왔다. 이에 국방부 인사 부서의 핵심 보직이 육사 출신 육군이 독점하면서 국방부 인사 라인이 고착화되고 폐쇄적인 구조를 형성해왔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현재 국방부 인사기획관리과 주요 보직자들은 12·3 비상계엄에 동조했다는 의심의 눈초리까지 받고 있다.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받은 전임 인사기획관인 오모 국장의 명령에 따라 ‘계엄 시행을 위한 인사 조치 지시 사항’ 및 ‘지상작전사령부 병력 통제를 위한 건의사항’ 등의 공문을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 있을 때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염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전체회의에 오모 국장을 출석시켜 공문 작성 등을 따져 묻기도 했다. 이런 의혹 때문에 안 장관이 취임한 후 첫 조치로 인사기획관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처럼 인사기획관리과는 주요 보직들은 육사 출신이라는 공통 분모를 통해 밀접하게 연계돼 이를 시급히 개선해야 지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장 인사기획관리과장인 김모 대령은 대령(진) 시절에 인사기획관리과 내 스마트인재관리TF 보직에 6개월 정도 있다가 여단장을 거쳐 사단급 참모장 직위도 하지 않고 인사기획관리과장으로 재보직된 케이스다. 이 덕분에 대령 1차 진급을 한 동기들보다 더 빨리 장군 진급이 가능한 핵심 직위에 근무해 국방부 내에 말들이 많다.
인사기획관리가 총괄인 이모 중령은 인사원칙에 따라 육군본부에서 장군인사 담당한 이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내 다음 보직으로 가야 하지만 이례적 오모 국장에 의해 국방부 인사기획관리과 총괄로 보직됐다. 이 때문에 인사기획관리과 총괄로 내정됐던 동기까지 밀어내 당시 무리한 인사라는 논란이 일었다는 후문이다. 이모 중령은 올해 대령 진급 1순위로 꼽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군인사팀장인 김모 대령(진)은 인사부서 경험이 전혀 없고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수방사령관 시절 비서실장으로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핵심부서 총괄로 보직된 이후 대령 진급이 되면서 곧바로 장군인사팀장으로 보직돼 오모 국장을 도와 김용현 전 장관의 인사 지시를 수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군의 보직과 진급을 좌지우지 하는 핵심 인사 부서를 육사 출신이라는 특정 인맥이 수십 년간 세습하듯이 독점한 탓에 국방부가 육군 중심의 조직이 되고 3군 균형 인사를 막는 폐단이 이어지고 있다”며 “문민 출신 국방장관은 이에 대한 정확한 진상 파악과 이를 해소할 근본적인 처방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