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는 미국에 늘 가깝고도 먼 이웃이었다. 냉전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 차단'을 명분으로 남미의 군부와 재벌, 보수 엘리트를 앞세웠다. 쿠바혁명 이후 '공산 도미노'를 막는 데 집중했다. 실제로 중앙정보국(CIA)은 과테말라 정권 전복(1954)과 칠레 쿠데타(1973)를 공작했다. 1980년대엔 니카라과 반군에 무기를 불법적으로 공급한 '이란-콘트라 사건'을 일으켰다. 냉전이 끝난 뒤엔 민주화·시장경제·인권이 새 키워드가 됐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쿠바와 국교를 정상화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대(對)남미 정책은 '채찍'으로 회귀했다. 집권 1기부터 불법 이민과 마약을 묶어 안보를 내세우더니, 2기 들어서는 이념을 문제 삼고 있다. 트럼프는 좌파 성향의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을 '마약 두목'이라 부르며 지원금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카리브해에서 미군이 '마약 선박'을 폭격했을 때 민간 어부가 사망했고, 페트로 대통령이 "주권 침해"라 반발하자 관세와 보조금 중단으로 즉각 보복에 나섰다. 명분은 '마약과의 전쟁'이지만, 실상은 좌파 정부에 대한 응징이다.
베네수엘라엔 더 혹독하다. 트럼프는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무너뜨려야 할 독재로 규정하고 CIA 비밀작전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리브해엔 구축함과 리퍼 드론, 특수작전함을 배치했다. 미 관료들은 "비공식적인 최종 목표는 정권 교체"라는 말을 흘렸다. 냉전 시기 군부를 뒤에서 조종하던 그림자가 '마약 단속'이란 이름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파나마운하 갈등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항만 운영권 장악을 "전략 자산 침식"으로 규정하고, 미 해군 순찰을 확대하며 파나마 정부에 재계약 철회를 압박했다.
반면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미국은 통화 스와프 200억 달러에 민간자금 200억 달러를 더해 총 400억 달러를 지원했다. 심지어 아르헨티나산 소고기 수입까지 검토했다. 중간선거를 앞둔 밀레이를 돕겠다는 의도는 노골적이다. 미국 내부에선 "재정위기 속 외국에 돈을 쏟아붓는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남미 정책은 '좌파는 적, 우파는 동맹'이라는 이념의 잣대로 갈린다.
미국은 카리브해와 안데스에서도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단발적 군사작전은 카르텔을 막지 못한다. 오히려 반미 감정을 자극해 남미를 중국·러시아 쪽으로 밀어낼 것"이라 경고했다. '더러운 전쟁(Dirty War)'은 1970∼80년대 남미 군부독재가 좌파를 탄압하며 자행한 비밀 작전을 말한다. 트럼프의 남미 개입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남미에서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한때 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이라 불렸다. 그 뒷마당에서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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