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동사가 한 해를 대표할 수 있을까? 일 년 동안 떠올랐던 모든 질문과 고민의 흔적을 담아내는 동사가 있을까. 2020년대를 반쯤 지나온 지금, 지난 오 년을 돌이켜보면 한 해를 대표하는 동사들이 있었다. 2020년, 우리는 ‘멈췄다’. 갑작스레 찾아온 팬데믹 덕분에 우리는 삶의 의미와 방식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2021년은 ‘적응했다’.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세계의 규칙에 몸을 맞추며 뉴 노멀을 받아들였다. 2022년 우리는 ‘만났다’. 단절되었던 공간과 멀어진 사람들을 다시 만났고, 그 만남이 전과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2023년은 ‘떠났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으로부터 마스크를 벗고 여행과 모험을 떠났다. 2024년 우리는 ‘모였다’. 흩어진 마음과 힘을 모았고, 그 모임이 내뿜는 힘으로 소중한 걸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동사들은 새로운 의미로 거듭났다.
2025년을 시작하면서 올 한 해 동안 기꺼이 함께하고 싶은 동사를 골라본다. 나를 변화시키는 동사, 작고 안락한 삶 속에 나를 고여 있게 하지 않고, 나 자신을 저 바깥으로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부추기는 동사가 무엇일지 고민해 본다. 낯섦을 이해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동사, 어려움 앞에 주저하지 않고 계속 맞설 수 있는 힘을 주는 동사가 필요하다. 2025년, 내가 의지할 동사를 고른다면, 그것은 ‘쓰다’다. 쓴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 마음과 몸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동적 행위. 혼란스러운 생각과 감정도 ‘쓰다’를 통해 밖으로 나올 때 비로소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세상을 바꾸는 씨앗이 된다. ‘쓰다’는 나로부터 시작해 세상으로 연결되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힘이다.
올해 내가 가장 잘 쓰고 싶은 건 마음이다. 마음을 제대로 쓰고 싶다. 바쁘고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나의 안온한 울타리 바깥으로 마음을 넓히는 법을 자꾸 잊는다. 정작 없는 건 여유가 아니라 노력이었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기발하고 다정하게 마음을 쓰는 사람들 덕에 부끄럽게 배운다. 추운 겨울,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나와 같은 뜻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배달 앱으로 따뜻한 음식을 보내주는 마음. 집회 현장에 가지 못해도 그 주변 카페와 음식점에 선결제를 해 온기를 나누는 마음처럼 창의적으로 ‘마음을 쓰는 방식’들이 자꾸 발명 중이다. 마음을 잘 쓰는 방식이 이렇게도 많았다니. 돈을 쓰는 방식이 이렇게 우아할 수 있었다니. 이토록 애틋하고 따뜻하게 연결되는 마음을 목격할 때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핑계로 마음을 내버려 뒀는지 반성하게 된다.
2025년은 잘 쓰는 사람들을 위한 해가 되길 바란다. 참신하게 마음을 쓰고, 슬기롭게 애를 쓰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 더 많은 축복을 받으면 좋겠다. 그들을 보고 배우며, 나 역시 잘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더 많은 것들에게 마음을 쓰고, 내가 아닌 것을 위해 애를 쓸 것이다. 한 해의 끝에서 올해를 정의하는 동사를 고를 때 익숙했던 ‘쓰다’의 뜻을 전과 다른 방식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기를. 쓴다는 것은 실천이고 연결이며 그리하여 창조라는 것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온전히 통과하여 깨닫기를 신년을 맞아 다짐해 본다. 바르고 단단하게 쓰인 그 힘과 마음이 모여, 우리는 함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정유라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