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호모커뮤니쿠스] 불통의 허물을 벗겨내는 새해

2025-01-05

새해가 왔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582년에 도입한 ‘그레고리력’에 따른 것이다. 새해는 지구가 대략 365일에 한 번씩 태양을 도는 공전에 걸리는 시간에 근거한다. 공전은 태양계에서 지구와 태양이 빚어내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시간의 흐름은 연속적인데 ‘지난해’ ‘새해’처럼 어떤 구분을 하는 것은 시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해가 바뀐다는 사전적 정의에 그치지 않고 지나간 시간(과거)과는 좀 다른 새로운 자신과 세계를 만들고 싶은 의미의 바람. 그래서 새해는 ‘변화’와 ‘시작’의 출발점으로서 상징성을 지닌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미래를 가늠하고 작심하는 것은 인간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꿈을 꿀 수 있는 동물인 인간에게 지극히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을사년 새해는 푸른 뱀의 해이다. 뱀은 밝음과 어둠의 양면적 이미지를 지니지만 관찰·성장·다산을 적극적으로 상징하는 동물이다. 무엇보다도 뱀은 새로운 성장을 위해 자신의 허물을 벗는 과정을 마다치 않는 용기와 지혜를 지닌다. 자신의 시공간을 규정하는 지금의 껍질을 탈피하는 변화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탄생시키며 자기의 운명을 개척한다.

새해는 불통의 2024년과는 달라야 한다. 여야 정당·다수당·대통령이 상대의 존재와 의견을 무시하고 부정하고 배제하며 우리 공동체에 혼돈과 퇴보를 초래한 불통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어이없는 비상계엄도 대통령의 불통이 부른 파국이었다. 당파적 이익을 위해 언어를 남용하고 오용하여 흉기로 만든 정치인 집단은 대오각성해야 한다. 언어는 “세계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수단이며, 동시에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한다(‘Representation’, Hall). 인간의 사유체계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하는 것이다. 정치집단의 일방적 언어, 무책임한 언어, 당파적 언어, 왜곡의 언어, 폭력적 언어, 거짓 언어, 비속한 언어, 무례한 언어는 국민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이분법 진영논리를 맹종하는 희생자를 양산하여 대한민국이라는 존재와 공동체를 망가뜨린다.

을사년 새해는 혼자 오지 말고 소통의 희망과 함께 와야 한다. 대화, 설득, 타협을 모색하는 소통의 과정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지혜롭다는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는 소통을 실천하는 ‘호모 커뮤니쿠스’ 역할에 충실할 때 존재할 수 있다. 새해에는 우리 공동체에 백해무익한 정치집단의 ‘불통 허물’을 벗겨내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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