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거없지만 자극적인 의혹을 제기해 일부 지지층의 환호를 받는 ‘음모론 정치’가 정치권의 뉴노멀이 되고 있다. “코스피 상승 배후에 중국이 있다”거나 “조희대 대법원 뒤에 일본 황실이 있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주장이 국회의원 입에서 나오고 있다. 일부 극성 지지층만을 의식한 음모론 제기가 횡행하면서 사실과 토론에 기반해야 할 정치 문화가 점점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수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2일 채널A 유튜브에서 “유령회사를 통해 (중국의) 불법적인 자금이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많이 흘러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코스피 상승 배경에 중국 자본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다”면서도 “차이나머니가 진입됐을 때 항상 위험성이 존재했다. 동북공정으로 의심되는 역사 왜곡이 일어난다거나 논란이 됐던 부분들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17일 TV조선 유튜브에 출연해서도 “모든 조건이 주가가 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올라가고 있다”며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다고 봐야 맞다. 전문가들이 불법적으로 중국 자본이 들어와서 한국 기업을 사들이고 있다고 지금 의혹 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에는 중국인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에 대해 범죄조직 침투, 전염병 전파 가능성을 제기했다.
‘야권 스피커’인 유튜버 전한길씨는 지난 20일 자신의 유튜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조 단위의 비자금을 싱가포르에 숨겨뒀다” 등의 영상물을 인용하며 근거없는 의혹을 제기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감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만나 ‘이재명 대통령 사건이 올라오면 대법원에서 선거 전에 확실하게 정리하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지만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 5월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한 유튜브 채널이 공개한 녹취록을 틀고 ‘윤 전 대통령 파면 후 정상명 전 검찰총장, 한덕수 전 총리, 김충식씨, 조 대법원장 등 4인이 만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혁진 무소속 의원은 지난 13일 법사위 대법원 국감에서 “조 대법원장을 윤 전 대통령에게 추천한 사람이 김건희 여사 계부 김충식씨라고 한다”며 “김씨는 일본 태생이고, 일본 황실가와 깊은 인연이 있고 일본 통일교와도 밀접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게 사실이면 김씨를 통해 일본 입맛에 맞는 인물을 대법원장으로 추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정치인들이 강성 지지층에 소구하고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음모론을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약간의 팩트와 엄청난 양의 거짓말을 넣은 음모론은 확산되기 쉽고 ‘미운 놈 때려준다’며 강성 지지층이 좋아한다”며 “핵심 지지층만을 바라보는 정치가 지속되니 정치라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이 진영 내 호응을 얻기 위한 개인 정치를 하는 것 같다”며 “여야가 공동 책임을 느끼고 정치 복원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당 안에서나 국회 내 윤리위원회에서 경고 조치를 하는 등 음모론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