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이자만 연 1270조원…‘천조국’ 미국이 트럼프 불렀다

2025-03-06

트럼프 쇼크, 어떻게 볼 것인가

1월 20일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출범 이전부터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 문제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트럼프의 트레이드 마크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이다. MAGA 정책은 제조업 부활, 반세계화, 세계경찰 역할의 축소, 이민 규제 등이다.

취임 이후 매일 빅뉴스가 터지고 있다.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25%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두 차례에 걸쳐 합계 20% 관세를 부과했다. 멕시코, 캐나다, 중국은 즉각 보복 관세로 맞섰다.

중국의 WTO 가입 후 6~7년간 미국 일자리 700만 개 사라져

제조업 부활 등 MAGA 정책은 트럼프 이후도 지속될 가능성

한국, 조기 대선 이후 정부·여당·기업 간 경제협의체 가동해야

제조업·중간재의 서비스화, 대기업-중소기업 협업체제 강화를

미국과 캐나다는 파이브 아이즈(FVEY, Five Eyes) 동맹국이다. 파이브 아이즈는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다섯 개 국가인데, 이들 국가의 정보기관끼리는 내밀한 정보를 공유한다. 말하자면, 미국과 캐나다는 ‘동맹 중에서도 동맹’이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동맹은 안중에도 없다. 트럼프는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들어오라고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캐나다 트뤼도 총리를 ‘주지사’라고 조롱한다.

취임한 지 겨우 한 달 반밖에 안 됐는데 해고된 공무원이 벌써 20만명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푸틴에게 우호적인 입장이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백악관 회담에서 모욕적인 대접을 받아야 했다.

오랜 동맹을 포함, 주요국에 대해 ‘관세 전쟁’을 선포하고, 푸틴에게 우호적이며,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전면 중단해버렸다. 트럼프는 왜 이런 일들을 벌이는 것일까? 물론 트럼프 개인의 캐릭터 특성을 빼놓을 수 없지만, 현재 미국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법의 일환인 측면도 있다. 가장 중요한 배경을 꼽으라면, 막대한 재정 적자와 제조업 일자리 감소다.

금융위기·코로나에 재정적자 급증

흔히 미국을 ‘천조국’이라고 표현한다. 미국의 국방비가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1000조원을 넘는 것에서 유래했다. 2024년 미국 국방비는 8741억 달러였다. 원화가치로 환산하면 약 1260조원 정도 된다. 미국의 재정적자를 상징하는 것도 ‘천조국’이다. 2024년 약 1년간 지출한 국채 발행 이자비용만 8820억 달러(약 1270조원)다.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원래부터 재정적자가 극심했던 것은 아니다. [그림 1]에 나오듯이 중요한 분기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2021년 코로나 경제위기였다. 두 번 모두 ‘세계 대공황 수준의’ 경제위기였다. 두 차례 위기 모두 과감하고 창의적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결합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연방준비제도(Fed)는 양적 완화를 실시했고 정부는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했다. 그 결과, 연방 재정적자는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증가했다. 코로나가 터졌던 2020년에는 3조 1320억 달러, 2021년에는 2조7700억 달러, 2022년에는 1조3700억 달러의 재정적자가 쌓였다. 가장 최근인 2024년은 1조8330억 달러였다.

막대한 재정적자와 이자 비용을 줄이려고 트럼프는 자기만의 솔루션을 추진 중이다. 공무원의 대규모 해고, 세계경찰 역할 축소, 관세를 통한 세금 징수, 동맹국에 안보 비용을 떠넘기는 것,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전면 중단하면, 유럽 국가들은 ‘유럽판 자주국방’을 추진해야만 한다. 경제 여력이 있는 일본·한국·대만에는 추가적인 ‘안보 비용’ 부담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서도 ‘주한미군 전면 철수’ 카드로 본인의 요구조건을 내걸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MAGA 정책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제조업 부활이다. 중국은 2001년 11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당시 미국 민주당의 빌 클린턴 정부가 도와줬기에 가능했다. 중국이 WTO 가입 시점에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약 1800만 명이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하게 되자,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급감하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약 6~7년에 걸쳐 무려 7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그림 2]. 중국이 WTO에 가입하자 ‘미국 공장’들이 대거 중국으로 이전했다.

1992년 이후 한국처럼 미국도 피해

한국에서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에 벌어졌던 일이다. 1992년 한·중 수교는 중국경제가 한반도에 상륙하는 의미를 갖게 됐다. 노동집약적 수출 제조업 분야의 경쟁에서 대구의 섬유산업과 부산의 신발산업이 초토화된다. 중국과의 ‘가성비’ 경쟁을 이길 수 없었다. 1992년 이후 한국 공장들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대거 중국으로 이전하게 된다. 똑같은 일이 중국이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다.

제조업은 저기술, 중기술, 고기술, 첨단기술 분야 일자리로 구분할 수 있다. 저기술 분야일수록 노동집약적이고, 첨단기술 분야일수록 지식집약적이고 자본집약적이다. 단위당 고용하는 노동자 숫자는 줄어든다. 중국은 1990년대에는 저기술 제조업에서, 2000년대에는 중기술 제조업에서 압도적인 가성비를 가졌다. 2020년대 이후에는 고기술과 첨단기술에서도 한국·일본·독일·미국 등을 맹추격 중이거나 추월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는 근본 원인은 경쟁국과의 ‘가성비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 괴팍하고 무례한 트럼프의 정책들은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와 이자 부담, 제조업 일자리 감소에 기인하고 제조업 부활을 목표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본인이 원하는 것을 실제로 얻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은 두 가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첫째, 미국 국내의 인플레이션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상대 국가들의 보복 관세는 미국 농산물 업자들의 수출 감소로도 연결돼 정치적 불만을 축적하게 될 것이다. 둘째, 관세 전쟁과 보호무역주의는 글로벌 차원의 총수요를 위축시킨다. 불확실성과 비용의 증대로 인해 글로벌 교역 규모를 줄여 모든 생산자에게 ‘더 작은 시장’을 제공하는 꼴이다. 당연히 세계 경제 성장률 역시 줄어들 것이다.

한국 경제의 특징은 수출과 제조업 비중이 크고 대기업 역할이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국경제의 특징은 대만·홍콩·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될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이었다. 국내 내수 시장과 중소기업을 경제발전 전략의 축으로 했다면,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고도성장은 불가능했다. 수출, 제조업, 대기업이라는 한국경제 특징은 ‘세계 시장’과 연결될 수 있기에 생산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었다.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부분적인 부작용이 있었을지언정 순기능이 훨씬 컸다.

‘서비스업의 재발견’ 중요

1960년대에서 2010년경까지 한국경제가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설계한 ‘전후(戰後) 경제 질서’의 덕이 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경제 질서는 ‘국제 자유무역 확대’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1929년 대공황은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경쟁에서 초래됐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도성장은 미국이 국제 자유무역질서를 창출하고, 세계경찰 역할을 해준 덕분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은 20세기 이전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달리 경제 패권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았다. 소련과의 체제 경쟁을 더욱 중시했기에, 상대방 국가에 안보 협력을 요구하되 경제 패권을 우선하지는 않았다. 이 지점이 20세기 이전 유럽 제국주의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식 패권의 차이점이다.

우리는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트럼프 퇴임 이후’에도 지속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그야말로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이 됐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 수출-제조업-대기업 중심의 한국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게다가 중국과 미국은 한국 수출시장의 양대 축이다. 중국의 수출 점유율은 약 20%, 미국의 수출 점유율은 약 19%다. 미국-중국의 관세전쟁은 그 자체로 한국경제에 큰 부작용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시대, 한국경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세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조기 대선이 이뤄진 이후, 새 정부가 주도해서 대기업을 포함하는 정부·여당·기업(경제)의 ‘정·여·경(政·與·經) 경제협의체’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경제 상황 자체를 ‘국가적 위기’로 인식해야 한다. 그간 고도성장을 이뤘던 한국 경제의 장점이 치명적인 리스크 요인으로 변해버렸다. 함께 힘을 모아 난국을 헤쳐가야 한다.

둘째, ‘서비스업의 재발견’이 중요하다. 전통적인 개념으로 보면 제조업은 교역재 성격이 강하고, 서비스업은 비교역재 성격이 강하다. 제조업 생산성이 더 빨리 향상되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에는 디지털화의 발달과 인공지능(AI) 발달 등이 맞물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제조업의 서비스화, 중간재의 서비스화가 확장되고 있다. 국제무역에서 제조업 증가 비율보다 서비스업 증가 비율이 더 가파르다.

셋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업 체제를 점검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은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논란의 중심이었지만, 동시에 장점이었다. 대기업은 중후장대 산업과 수출에 용이했다. 지금은 혁신형 중소기업, 디지털화, 서비스업과의 결합이 중요해지고 있다. 중소기업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중소기업은 기동성이 있는 반면, 자본과 자원이 부족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체제가 중요한 이유다. 재벌은 점진적으로 개혁하되, 대기업은 더욱 장려해야 한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좋은 불평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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