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 문미숙 ‘거미의 집’

2026-01-01

길 건너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섰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인다. 평소에는 무심했었는데 번듯한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 생각들이 복잡하다. 이십여 년 동안 베란다에 쌓인 짐들도 심란하다. 창밖 풍경을 밀어 올린 마천루 같은 새 아파트를 올려다보다가 베란다에 눈길이 머문다. 천장 구석에 풍장인 듯 버석한 거미 한 마리가 구석에서 대롱거린다. 거미의 몸피가 오래전 염을 했던 고모 같기도 하다. 바스러질 듯 형체만 남은 거미를 손바닥에 올려 바라본다. 제문을 소지하듯 창밖 바람에 실려 보낸다.

고모네 집은 뒷산이 병풍처럼 두른 곳이다. 기와가 올려진 작고 오래된 집은 내가 태어난 곳과 지척이라서 내 어릴 적 추억은 고모 집 울타리 안에 더 많이 쌓여 있다. 저물녘이면 산자락이 내려와 길을 만드는 풍경이 좋았다. 그 풍경을 따라 사위 붉어지면 적막이 손님처럼 찾아오곤 했다. 베란다에 머문 시선을 거두고 지금은 빈집으로 사는 고모네 집으로 향한다.

주인 없는 빈집은 치매를 살았던 고모처럼 기울어져 있다. 독채 옆에 창고가 전부였던 집은 고모가 살면서 하나씩 덧대어졌다. 뒤란으로 슬레이트를 올린 창고가 들어서고 그 옆에는 별채를 지어 아궁이를 놓아 자식들의 방을 들였다. 정지 옆에도 감추고 싶은 살림살이를 넣을 수 있는 헛간을 거미집처럼 덧댔다.

고모부가 일찍 돌아가시고 세 아들 모두 타지로 보내 홀로 남은 고모는 세간들과 함께 늙어갔다. 늘 웃는 얼굴이었지만 구멍 난 거미줄처럼 어딘가 모르게 허허로워 보였다. 소식도 없이 객지를 떠돌다 죽은 막내아들의 유골을 선산에 묻을 때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고모는 그해 겨울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리곤 그 후유증으로 치매를 앓았다. 어쩌면 고모는 유골이 되어 돌아온 막내아들 때문에 스스로 치매로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식솔들을 건사하느라 뭔가를 자꾸 덧대야만 했던 고모의 시간은 막내아들의 죽음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고샅길을 돌아 고모 집 앞에 선다. 대문을 지키고 있던 나무가 주인을 잃어서인지 앙상하다. 사람의 손길을 잃은 마루에는 먼지가 뿌옇다. 마루까지 길게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에 기댄 고모의 의수가 졸음인 듯 기울어져 있다. 자식들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했던 고모는 농기계에 한쪽 팔을 빼앗기고 말았다. 의수를 하고서도 늙은이가 뽀얀 처녀 손을 선물로 받았다며 웃어넘기셨다.

오래 닫혀있던 정지문을 연다. 돌쩌귀 소리가 미끄러진다. 정지바닥 한쪽에는 생전 고모의 종아리처럼 비쩍 마른 장작이 삭아 간다. 조금만 비가 와도 물이 고여 고모의 속을 썩이던 아궁이의 검은 물자국이 세월의 무상함으로 다가온다. 까맣게 그을린 정지에 온통 거미줄이다. 죽은 듯 매달려 있는 집거미의 다리 하나가 허공을 잘라낸 듯 없다. 어디에서 잃었을까. 거미와 고모가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정지문 틈으로 한 줄기 빛이 든다. 고모의 헛웃음이 거미줄에 걸려 흔들린다.

정지문 밖 뒤란 감나무 사이로 시절 인연인 듯 개밥바라기별 환해진다. 산 그림자를 따라 고모 집을 나선다. 고모의 의수가 노을빛에 생기가 돈다.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것 같다. 고모가 남긴 것은 빈집의 의수가 아니라 의수를 하고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삶의 줄을 치는 거미였다.

거미는 용도에 따라 집을 짓는 실, 먹이 저장하는 실, 여기저기 이동하는 실을 뽑아낸다는데 고모도 거미처럼 가족을 위해 이런저런 삶의 실을 뽑아냈지 싶다. 때로는 그 삶의 실이 바람에 날리고 끊겨도 다시 짓고 지었을 고모의 거미집, 그곳에는 의수가 외롭게 산다.

의수를 빈집에 두고 오는 길, 고층아파트 속에 오래된 내 보금자리가 보인다. 나는 거미집 같은 저 낡은 집에서 어떤 거미줄을 치며 살아왔을까. 생의 거미줄을 뽑아내 횅한 고모의 가슴이 한 줄기 바람처럼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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