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 내란·외환죄 모의의 핵심 정황이 기록된 ‘노상원 수첩’을 둘러싼 검찰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수첩엔 수거대상·사살 등 계엄 선포 이후 체포조 운영을 염두에 둔 듯한 내용은 물론 오물풍선·NLL·포격유도 등 북풍(北風)몰이의 흔적도 담겼다. 다만 이 수첩 속 내용과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과의 구체적 연관성은 입증되지 않았고, 작성시점·의도·보고여부 등도 현재로선 불분명한 상태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경찰 조사 단계부터 수첩 내용과 관련한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고 있어서다.
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은 지난 15일 노 전 사령관이 운영한 경기 안산의 ‘○○보살’ 점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이 수첩을 확보했다. 이후 노 전 사령관을 상대로 ‘서해 NLL(북방한계선)에서 북의 공격 유도’ 등 수첩 속 내용에 대한 조사를 시도했지만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등을 통해 수첩 내용 일부가 공개됐을 뿐 관련 수사는 공전했다. 국수본 관계자조차 “개인적 망상을 적은 것인지, 내란 모의의 결정적 증거인지 지금은 알 수 없다”고 할 정도다. 결과적으로 수첩 속 내용을 계엄 모의 및 외환 유도의 직접 증거로 입증하는 일은 지난 24일 노 전 사령관을 구속 상태로 송치받은 검찰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됐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선 이미 노상원 수첩 내용을 토대로 외환 혐의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타국과의 충돌을 조장하려 했다면 이는 명백한 외환죄다. 하루빨리 윤석열을 체포하라”(한민수 민주당 대변인, 지난 23일 서면브리핑)면서다. 형법(제92조)상 외환죄는 “외국과 통모하여 대한민국에 대하여 전단(戰端)을 열게 하는” 경우에 적용된다. 전단은 ‘전쟁 발발의 계기’를 의미하는데, 노 전 사령관이 수첩에 적힌대로 북한의 대남 포격 및 국지전을 유도하는 계획을 실제로 이행했다면 외환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이 수첩 내용과 비상계엄 간의 연관성을 확인하고 내란·외환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선 당사자인 노 전 사령관에 대한 조사와 함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진술도 확보해야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예비역 신분으로 문상호 정보사령관을 비롯한 군 현역 지휘부를 상대로 지시를 내리고 계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 전 장관에게 관련 내용을 주기적으로 보고했기 때문이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을 모의하는 과정에서 수첩에 관련 내용을 기재한 것이라면 김 전 장관 역시 이같은 내용을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은 “노 전 사령관이 작성했다는 수첩의 존재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입장에선 오는 28일 김 전 장관의 구속기간(20일)이 끝난다는 점도 변수다. 검찰은 지난 8일 김 전 장관을 체포한 이후 10여회에 걸친 소환 조사를 통해 국회 장악·점거 시도, 선관위 침입 및 서버 탈취 등에 대해선 상당 부분 수사가 진전됐지만,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은 지난 24일 증거를 송부받은 탓에 아직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검찰은 일단 오는 27일 김 전 장관을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기소하는 데 무게를 두고 막판 혐의 다지기에 주력하고 있다. 계엄군을 투입해 헌법기관인 국회·선관위를 장악하고 기능을 마비시키려 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국헌 문란 행위에 해당한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의 구속이 만료되기 전까지 방첩사령부가 주축이 된 체포조 운영 의혹과 함께 노 전 사령관 수첩에 담긴 ‘수거 계획’을 확인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는 정치인·언론인·판사·공무원 등을 ‘수거 대상’으로 지칭하고 일부에 대한 해상 사살을 포함한 수용·처리 방법 등이 담겨 있다고 한다. 검찰은 방첩사가 정치인 체포를 시도한 것처럼 노 전 사령관이 정보사를 동원해 이른바 ‘비선 수사2단’과 같은 또 다른 체포조를 운영하려고 시도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방첩사령부를 주축으로 정치인·법관 등을 체포·구금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졌다는 ‘체포조 운영’의 경우 경찰·국방부조사본부가 관여했다는 의혹으로 번지며 수사 범위와 대상이 대폭 확대됐다. 특히 경찰의 체포조 지원 의혹의 경우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 중인 국수본이 계엄 선포 직후 방첩사의 요청에 따라 영등포서 강력팀 수사관 10명을 지원 인력으로 국회로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다만 이들이 방첩사의 정치인 체포 계획을 알고 있었는지, 체포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움직인 것인지 등은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