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작정한 듯 집회를 방해했다. 우선 전투적인 복색부터가 평소와 달랐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집회·시위를 위해 대화경찰이 움직이고, 집회 가능 공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던 과거의 경찰활동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든 집회 참석을 막아보려는 건지, 집회 참석자들을 자극해 뭔가 꼬투리를 잡겠다는 건지, 경찰은 내내 과도했다. 지난 주말 서울 도심은 경찰이 시민을 향해 도발하고 시민이 항의하면 체포해버리는 군사정권 때의 거리를 연상케 했다.
국회에 나온 경찰청장은 뻣뻣했다. 집회에 참석하지 않은 다른 시민들의 불편 때문에 ‘불법행위’를 제지했단다. 차량 흐름을 핑계로 댔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모인 집회도 원활하게 관리했던 경험과 역량을 지닌 경찰의 수장이 할 말은 아니다. 집회란 원래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건 민주국가의 상식이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모이면 탄력적으로 한 차선씩 집회 공간을 늘려주면 된다. 시민과 충돌할 일은 전혀 없다.
경찰의 집회 방해에 항의하는 시민에게 물리력을 행사하고 체포하는 건 자의적 법적용이며 공권력 남용이다. 게다가 경찰은 집회 참석자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국정 전반이 난맥상을 보이지만, 기초질서를 확립해야 할 경찰까지 이렇게 엉망이 된 것은 충격적이다. 경찰은 법치주의, 법의 지배라는 원칙에서 너무 멀어졌다. 다행히 법원이 영장을 기각해서 한국은 인권후진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사법부가 법치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검찰의 일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경찰보다 힘이 센 데다, 대통령까지 배출했으니 거리낄 게 없다는 태도다. 윤석열 정권 이전에도 검찰은 수사권, 기소권에다 형집행권까지 장악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다. ‘검찰공화국’이란 말이 유행할 만큼 걱정스러운 상황이었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자 검찰은 최소한의 염치조차 던져 버렸다. 윤석열 정권 2년 반 동안 검찰은 오로지 이재명 대표를 제거하는 게 사명인 것처럼 굴었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문제가 안 됐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알려주겠다는 듯 전방위적 압박을 했다. 이재명 대표가 일했던 성남시, 경기도와 민주당은 일상적으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무차별적이었다. 이 대표를 잡겠다고 376회에 걸쳐 압수수색을 벌였고, 검사 70여명을 투입했다. 구속영장도 두 번이나 청구했다.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모두 7건이었다. 오늘 1심 선고가 나오는 공직선거법 사건과 25일 선고를 앞둔 위증교사 사건 말고도 대장동, 위례신도시, 성남FC, 백현동에다 대북송금까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대장동, 위례, 성남FC와 백현동은 병합해 진행하지만, 대북송금 사건은 수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공격이 다 끝난 건지도 알 수 없다. 여태 그랬던 것처럼 검찰이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낼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당장 오늘 1심 선고가 예정된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 공표’도 그렇다. 누군가를 아냐고 물었을 때 몰랐다고 답한 것과 박근혜 정부의 국토부 등이 백현동 사업을 압박했다는 국정감사에서의 발언이 심판대에 올랐다. 선거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이재명 대표는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고 5년 동안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다음 대선에 나올 수 없게 되는 거다. 민주당은 국가에 보전받았던 선거비용 434억원을 반납해야 한다. 말 한마디에 대한 대가치곤 너무 치명적이다.
그래서 국가형벌권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다른 방법으로 바로잡을 길이 없을 때에만 제한적으로 행사하는 국가작용이다. 게다가 이재명 대표가 누군가를 기억하지 못했다고 범죄자라고 윽박지르는 공권력의 횡포가 오늘의 ‘이재명 리스크’를 만들었다. 누군가의 기억이나 인식 상태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래도 검찰은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감행했다. 이 대표에 대해서처럼 촘촘한 그물이 아니라 아주 성긴 그물이라도 윤석열 대통령에게 던져본다면 어떨까. 대통령 당선 자체가 무효가 되지 않을까. 검찰은 그러지 않았다. 이렇게 검찰이 막무가내로 도발할 때, 문제를 푸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법원이 제 역할을 하는 거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온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는 방법은 지금으로선 하나뿐이다.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법원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리고 상식에 따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올곧은 판결을 통해 법치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지금, 이 순간, 법원을 주목해야 할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