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장 중심 의료, 미국 공공의료 도전과 변화

2025-05-01

[기획] <월간복지동향>이 제안하는 의료대란 해법 “공공의료에서 찾다”

① 닮았지만 서로 다른, 일본 공공의료 현황과 방향 | 이요한

② 시장 중심 의료, 미국 공공의료 도전과 변화 | 정혜주

③ 건강이 인간의 기본권, 이탈리아 국영의료 | 문정주

④ 영국 NHS의 위기, 의미와 변화는? | 이안 그리너, 마틴 파월

2024년 2월 6일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촉발된 의료대란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과 사회보장제도 근간을 흔들었다. 필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 환자 사망률은 증가하고 진료 대기로 인한 피해가 연일 이어졌다. 이는 국민건강보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며 그동안의 국가적 노력을 허사로 만들었다.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된 지금, 의료대란으로 망가진 구조를 어떻게 발전적으로 복구해야 할까? <월간복지동향>은 그에 대한 해법으로 ‘공공의료’를 주목했다. 앞으로 4주 차에 걸쳐 일본, 미국, 이탈리아, 영국 사례를 살펴보고 제21대 대통령선거 이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울산저널]이승진 시민기자= 정혜주 교수(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는 <월간복지동향> 기고에서 “2024년 뉴욕에서 발생한 민간 보험사 CEO 피살 사건은 미국 의료체계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면서 “현장에서 발견된 ‘지연’, ‘거부’, ‘방어’ 등의 단어가 새겨진 탄피는 보험금 지급 거부 관행이 주요 동기임을 암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에 대한 대중 반응은 충격적이었다”면서 “회사 공식 애도 성명에 대한 소셜미디어 반응 92%가 ‘웃음’ 이모티콘이라는 사실은 미국 의료보험 체계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 사건이 미국 사회에 던진 파문이 컸던 것은 의료체계의 근본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라면서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기술과 시설을 자랑하지만 동시에 의료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나라”라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이중성은 미국 의료체계가 시장 중심으로 발전해 온 결과지만 완전한 시장 방임은 아니었다”고 전제한 뒤 “1965년 존슨 행정부는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 일환으로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라는 두 개 공공의료 보험을 도입했고 이는 미국 의료체계에서 정부 역할이 본격화되는 전환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미국 보건의료 시스템은 다섯 가지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면서 “군인 대상 VHA시스템, 메디케어, 빈곤층을 위한 의료부조 메디케이드, 대다수 민간의료보험 시스템, 자선단체와 비영리기관 자선 활동”이라고 정리했다. 여기서 “메디케어는 노인 의료보장으로 65세 이상 노인과 특정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연방 의료보험 프로그램”이라면서 “재원은 주로 근로자와 고용주가 납부하는 메디케어 세금으로 조달되고 프로그램은 Part A(병원보험), Part B(의료보험), Part C(민간 보험사), Part D(처방 약 보장)로 나뉜다”고 덧붙였다.

이어 “메디케이드는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 지원 프로그램으로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특징을 갖는다”면서 “각 주는 연방정부가 정한 기본 가이드라인 내에서 자체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메디케이드 진화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연방 빈곤선’ 138% 이하 성인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부분”이라고 평가한 뒤 “그러나 2012년 연방대법원 판결로 각 주정부가 확대 정책 수용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되면서 주별로 의료보장 격차가 발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공의료에 있어서는 “미국 전체 5249개 병원 중 956개(18.2%)가 공공병원으로 OECD 평균 공공병원 비율 57.0%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라면서 “병상수로 보았을 때도 OECD 평균 71.6%에 비해 21.1%로 의료체계의 시장 중심적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미국 공공의료기관은 크게 재향군인건강청과 지역사회 보건소 등을 통해 의료 취약지역 최전선을 지키고 있다”면서 “그러나 현재 심각한 운영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메디케이드 환자 비중이 높고 메디케이드 수가가 낮기 때문”이다.

미국 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서도 짚었다. 정 교수는 “미국은 OECD 국가 중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이 가장 높은 나라지만 건강수명과 영아사망률 등 핵심 건강지표는 여전히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면서 “이는 높은 의료비 지출이 반드시 좋은 의료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분절된 의료체계와 높은 행정비용에 있어서도 “다양한 (민간)보험사 존재와 복잡한 청구 절차로 인해 다른 고소득 국가에 비해 효율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여러 보험사가 서로 다른 보장 범위와 청구 절차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의료 불평등 등 형평성 문제에 있어 인종 간 건강 격차가 크게 나타나는데 흑인 기대수명이 백인에 비해 평균 7.6년 짧다는 점은 의료 접근성 불평등을 포함한 사회적 환경의 불평등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소득에 따른 의료 접근성 불평등에 있어서도 “소득 하위 20% 가구 약 35%가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데 의료비 이외에도 약값, 교통비, 병가로 인한 소득 손실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저소득층은 만성질환 관리 이용률이 낮고 보험 미가입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미국의 의료체계 개혁은 정권 교체에 따라 얼마나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면서 “한국도 의료 공공성 강화라는 세계적 흐름을 따르되 정치적 변화에 덜 취약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용 효율성을 낮추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민간 보험사 중심의 분절적 시스템이 아니라) 통합적 시스템이 중요한데 서울대학교 분당병원 사례는 EMR 표준화와 데이터 통합이 진료의 질을 향상시키고 행정적 비효율성을 감소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제시했다.

결론적으로 “미국 공공의료체계는 세계 최고 의료 기술과 시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심각한 의료 불평등에 시달리는 현실”이라면서 “막대한 의료비 지출에도 OECD 꼴찌 수준인 건강지표와 보험사 CEO 피살 사건으로 상징되는 의료체계에 대한 불신과 분노는 시장 중심 의료체계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 준다”는 진단이다. 정 교수는 “의료체계 성공은 의료 기술 발전과 시설 확충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으며 공평한 접근성, 예방의료 강화, 효율적 자원 활용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승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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