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이후 유일한 女거물 정치인' 평가
김문수도 한 수 접어준다는 '희생과 헌신'
당원과 지지자들의 사랑을 받는 정치인
그러나 명성에 못 미치는 차기 주자 지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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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당 당원·지지자들의 '아픈 손가락',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의 정치 궤적을 대표하는 단어다. 나 의원은 2004년 총선으로 정계에 입문할 때에는 세련된 대중성과 친화력으로 주목을 받으며 '꽃길'만 걸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아무도 출마하지 않으려 하는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등 '희생과 헌신'을 거듭하거나, 당 주류의 압박으로 당권 도전을 멈춰야 하는 등 부침을 무수히 겪었다.
그럼에도 나 의원은 리더십과 정책으로 전국적 인지도를 끌어올리며 '선거 경쟁력'을 입증받았다.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특히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도 '잠룡'으로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는 27일 나 의원을 '보수 진영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거의 유일한 여성 거물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서울법대 82학번으로 판사 출신인 나 의원은 2004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했고, 4년 뒤 총선에서는 여성 비례대표 의원의 생환율은 극도로 낮다는 징크스를 깨고 보수 정당의 '험지'인 서울 중구에서 재선 고지에 올랐다. 초선 때는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대변인, 재선 때는 최고위원을 지내면서 보수 진영에 확실하게 '유능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나 의원의 인지도가 최정점을 찍은 계기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다. 이 때 나 의원은 지금도 국민의힘에서 나란히 대권주자로 평가받고 있는 오세훈 서울특별시장, 홍준표 대구광역시장, 안철수 의원과 인연이 얽힌다.
오세훈 시장이 좌파 포퓰리즘에 제동을 걸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좌절을 겪자,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열리게 됐다. 당시 박원순 전 시장은 안철수 의원으로부터 후보단일화를 받았던터라 여권에서는 딱히 박 전 시장에게 대항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한나라당 '홍준표 체제'에서 재선 의원이었던 나 의원이 '희생과 헌신'을 맡았다. 의원직을 던지고 뛰어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 의원은 박원순 전 시장을 상대로 7%p 차로 석패했다. 이후 두 차례의 서울시장 선거에서 정몽준 후보는 13%p차, 김문수 후보는 29%p차로 박 전 시장에게 패배했다는 점, 박 전 시장 측에서 각종 네거티브로 나 의원 이미지를 흠집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 의원은 뛰어난 선거 경쟁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의원직까지 사퇴하고 배수진을 친 채 선거에 임했던 나 의원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낙선한 뒤 이듬해 2012년 총선에도 불출마, 33개월에 걸친 긴 정치적 공백을 갖게 됐다. 나 의원의 '정치적 부활'은 2014년 7·30 서울 동작을 보궐선거에서 이뤄졌다. 이 때에는 김문수 현 고용노동부 장관과 인연이 얽혔다.
야권은 고 노회찬 전 의원으로 단일화를 이뤘다. 여권에서는 김문수 장관 등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출마하지 않으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다시금 나 의원이 '희생과 헌신'을 하게 됐다. 나 의원은 노 전 의원을 상대로 1.3%p, 불과 929표차 신승을 거두는 역사를 써냈다. '희생과 헌신'에서는 김 장관도 나 의원에게 한 수 접어준다는 말이 지금까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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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의원은 2016년 동작을에서 다시 당선되며 '수도권 4선' 고지에 올랐다. 이렇게 '부활'에 성공한 나 의원은 문재인정권이 들어서자 야당 원내대표가 돼 대여(對與) 투쟁에 앞장섰지만, 총선을 불과 5개월 앞둔 2019년 12월 청와대 앞 천막에서 돌연 '원내대표 임기 만료'를 통보받았다.
'투톱'으로 자유한국당을 이끌던 황교안 당시 대표가 나 원내대표의 존재감을 부담스러워 해서, 총선을 앞두고 원내대표를 바꾸려 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문재인정권에 맞서야 할 제1야당 지도부가 청와대 앞 천막에서 나경원 원내대표와 정용기 정책위의장의 임기를 끝내겠다며 당헌·당규집을 꺼내서 뒤적거리고 있던 모습은 지금도 '시대의 웃지 못할 희극'으로 기억되고 있다.
같은 편에 의해 깊은 내상을 입은 나 의원은 2020년 총선에서 충격의 낙선을 맛봤다. 원외(院外)로 나가게 된 신세였지만 나 의원은 4선 시절 쌓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역할'을 했다. 문재인정권이 임기말 어떻게든 미북 종전선언을 이뤄내기 위해 '위험한 거래'를 시도할 때, 원외 신분임에도 미국을 방문해 미국 조야의 여러 정치인들을 만나며 이를 막아냈던 게 나 의원이었다.
문재인정권이 심판받고 윤석열정부가 들어섰지만 나 의원에게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은, 여전히 한겨울 같은 시련이 이어졌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제시했는데, 대통령실에서 때아닌 핍박을 가했다. 나 의원이 저출산 대책으로 자녀 수에 따라 대출금을 탕감하거나 면제하는 안을 내놓자, 대통령실에서 공개적으로 "개인 의견일 뿐 정부 정책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당무 장악 구상'에 나 의원이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2023년 국민의힘 3·8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나 의원의 불출마를 종용하는 '연판장'까지 돌았다. 친윤(친윤석열)계의 압박이 거세지자 나 의원은 결국 "우리 당의 분열과 혼란을 막을 수 있다면 내가 내려놓겠다"며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 또 한 차례, 적진이 아닌 아군 진영에서 날아온 총알에 '희생과 헌신'을 한 것이다.
나 의원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동작을을 민주당으로부터 탈환하며 5선 중진 반열에 오른 뒤 가진 라디오 인터뷰에서 '연판장 사태'에 대해 "당대표 출마 결심을 완전히 한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내 진의가 너무 왜곡됐다"며 "자당 내에서 공격받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지금이야 정치를 다시 하니까 또 잊어버린다"며 "연판장에 서명 안한 사람들하고만 놀려면 같이 할 사람이 별로 없다. 그렇게 하면 누구랑 정치를 같이 하겠느냐"고 초연한 자세를 보였다.
나 의원의 행보는 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더욱 부각됐다. 나 의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윤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 저지를 위해 한남동 관저 최전선에 섰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와 함께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윤 대통령 면회까지 다녀왔다. 헌법재판소의 편향성과 불공정성을 비판하는 일에도 앞장서왔다. 이를 두고 여권에서는 "나 의원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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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 시사평론가는 "나 의원의 가장 큰 장점은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전국적 인지도"라며 "여성 정치인으로서 5선을 하기까지 온갖 시련들을 겪으면서도 그 자리를 지켰다"고 평가했다. 이어 "자유한국당 시절 굉장히 당이 힘들었는데, 그걸 추스르면서 당을 이끌어 나갔을 때 '강경한 여전사' 이미지를 얻지 않았느냐"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부연했다.
나 의원이 보여준 압도적인 전국적 인지도는 '정책'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다. 대통령실과 갈등을 벌였던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은 진보 진영에서도 "굉장히 탁월한 내용"이라는 호평을 받았으며, 국민의힘에 반감을 갖고 있던 국민 사이에서도 주목받았다.
22대 총선 당선으로 국회에 돌아온 나 의원은 가장 먼저 해당 내용이 담긴 '주거기본법 개정안'을 첫 법안으로 발의했다. 개정안은 신혼부부가 2억원 이하 주택자금을 연 1% 이내 초저금리로 대출할 수 있게 하고, 출산 시 자녀 수에 따라 대출금 이자와 원금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나 의원은 '필리핀 가사관리사' 최저임금 구분적용 추진에 적극 나서기도 하고, 중국 인공지능 딥시크를 둘러싼 정보유출 논란이 벌어지자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딥시크 사용을 제한하는 정보통신망법·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당원, 그리고 보수정당 지지자들은 나 의원의 이러한 정치역정과 부침을 잘 알고 있다. 나 의원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 차례 희생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내 후보 경선은 당원투표 없이 여론조사 100%로만 치러졌기 때문에, 나 의원이 다시 한 차례 분루를 삼킬 때 당원들은 그의 눈물을 닦아줄 수가 없었다.
2021년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에서는 당원투표에서 40.9%로 1위를 차지하고서도 국민여론조사에서 밀리면서 이준석 전 대표에게 당대표 자리를 내줬다. 2023년 3·8 전당대회는 윤 대통령의 핍박에 출사표조차 내지 못했다. 지난해 7·23 전당대회는 친한(친한동훈)계가 한동훈 후보를, 친윤(친윤석열)계가 원희룡 후보를 총력지원하는 와중에 러닝메이트도 없이 홀로 뛰면서도 14.6%를 득표, 2위 후보(18.9%)와 별반 다르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오히려 저력을 과시했다.
'그 때 나경원이 됐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당원들이 많은 지금, 나 의원이 당원과 지지자 사이에서 '아픈 손가락'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분명해보인다. 하지만 대권 도전은 또 전혀 다른 차원의 도전이다. 나 의원이 대권 도전에서 성공하려면 원내·당내 세력을 넘어 국민적 지지율을 끌어올려 본선 경쟁력이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여권 관계자는 "인지도가 여권에서 거론되는 대권주자 중에 가장 높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그만큼 중도 확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어 있다"며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선 나 의원 만의 특화된 무언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지난 18일 100% 무선 ARS 방식으로 국민의힘 지지자와 무당층 555명을 대상으로 '윤 대통령이 탄핵될 경우 범여권 대선 후보 가운데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를 물어본 결과, 나 의원은 3.2%를 기록했다. 반면 김문수 장관(37.0%), 오세훈 서울시장(13.5%), 한동훈 전 대표(11.0%)는 해당 조사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