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일부 제약사가 공시한 보고서에서 오기 뿐 아니라 수정없이 전년도 내용을 그대로 붙인 경우가 발견됐다. 재무제표나 특수관계자 거래 등의 중요한 정보를 두고 잘못된 기재를 한 기업에 대해 무책임을 비판하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원제약 반기보고서에서 특수관계자 거래 등 항목에 수치상 오류가 확인됐다. 연결재무제표 주석에 딸린 28번 항목에서 특수관계자 거래내역, 특수관계자 채권·채무내역, 주요 경영진에 대한 보상내역 등 해당 항목에 속한 모든 수치가 지난해 반기보고서와 1원 단위까지 일치했다.
해당 오류는 3분기 보고서가 나온 지난 14일까지 정정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취재 결과 회사 측에서는 오류 발생 사실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원제약 관계자는 "해당 내용은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지난해 수치를 그대로 옮긴 오류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내용을 그대로 '복붙'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해명과 달리 이번 반기보고서에서 문제가 된 항목에는 수정 사항도 있었다. 당반기 중 관계사 다나젠이 대원바이오텍으로 사명을 변경했는데, 해당 사항은 수치가 잘못 표기된 도표에도 반영되어 있었다. 즉 도표를 작성하며 사명은 바꾸면서도 수치는 그대로 두는 이해되지 않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회사 측은 추가 해명 없이 최근 3분기 보고서가 나왔으니 해당 내용을 참고해 달라는 입장이지만, 해당 분기 3개월 치와 누적치를 따로 기재하는 주요 경영진 보상 내역을 제외한 다른 수치는 모두 당분기, 당반기로만 표기되어 있어 올해 2분기 수치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태다. 2분기 수치는 12월 결산 보고서가 나온 후 1분기 수치와 3분기 수치를 제한 다음에야 정확한 파악이 가능할 걸로 보인다.
올해 공시 오기재를 저지른 제약사는 대원제약만이 아니다. 지난 2분기 JW중외제약 역시 재무제표 관련 단위 기재 오류를 저질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JW중외제약은 지난 8월 24일 반기보고서에 대한 기재 정정 신고했다. 정정 사유는 단위 기재 오류로, 중외제약은 정정 전 백만원이었던 재무제표 단위를 원으로 수정했다. 수정 전 반기보고서에는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35경원, 3경8000조원 등으로 기재됐다.
실제 반기 보고서상에는 금액 단위가 재무제표 상단에 따로 표시된다. 이 경우 투자자가 쉽게 단위 오기재로 추측할 수 있으나, 국제표준 전산 언어(XBRL) 공시에는 왜곡된 수치가 그대로 노출되며 오류가 정정 되기까지 12일간 투자자에 혼선을 줬다.
명문제약은 지난 3월 2023년도 사업보고서를 공시했는데 파이프라인 관련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 나온 사업보고서에 신경근 차단 역전제 '슈가딘주'(성분명 슈가마덱스나트륨, 개발명 MMP-202)에 대해 허가취득을 완료하고 '2023년 3월 발매 예정'이라고 썼고, 관절염 치료제 '쎄레텍정'(성분명 세레콕시브층·연조엑스층)에 대해서는 '2023년 11월 판매 예정'이라고 기재했다.
또 '에페신에이스정'(성분명 아세클로페낙·에페리손염산염, 개발명 MMP-301)은 2022년 12월 발매 예정이라고 썼다.
실제 명문제약은 세 제품을 각각 지난 2022년 11월, 지난해 3월·11월 예정대로 출시했다. 에페신에이스정의 경우 제품이 발매된 지 2년이 넘도록 보고서를 업데이트하지 않고 공개한 것이다.
이외에도 명문제약은 기재 정정 보고서를 통해 연구개발 실적 항목에서만 7개가 넘는 내용을 추가로 정정했다. 또 요약 재무제표, 타법 인출자 현황 등 크고 작은 내용에 대한 정정도 이어졌다.
이들 기업이 오기재한 정보는 투자자에게 필수적인 정보로 평가받는다. 연결재무제표는 물론 특수관계자 거래와 파이프라인 관련 정보도 마찬가지다.
대원제약이 오기재한 특수관계자 거래는 기업의 당기순손익과 재무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에게 중요한 정보로 여겨진다. 특수관계자는 특수관계가 아니라면 이루어지지 않을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다.
예시로 기업이 지배기업에 원가로 판매하는 재화를 다른 고객에게는 동일한 조건으로 판매하지 않아 부당한 이득을 줄 수 있다. 특수관계자와의 거래, 약정을 포함한 채권·채무 잔액과 특수관계에 대한 이해는 투자자가 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과 기회에 대한 평가를 포함해 기업의 영업을 평가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주요 경영진에 대한 보상내역 역시 기준서 1024에 따라 요구되는 필수 공시로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주요 수단 중 하나다.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가 매년 지배구조를 평가하는 기준에 특수관계자 부분이 있을 만큼 ESG 측면에서도 중요시되는 정보다.
명문제약이 방치했던 파이프라인 정보는 제약바이오사에 투자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정보로 여겨진다. 의약품 품목허가나 제품출시가 아닌 식약처, 미국 식품의약국 등 의약품 규제기관에 임상시험계획서(IND)를 제출하는 것조차 공시 대상이며, 주가가 해당 공시에 따라 널뛰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이들 기업이 수년간 지속해서 오류를 방치하거나 오류를 발견하고도 정정 의지를 보이지 않는 등 대체로 보고서 공시에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일부 기업의 반복되는 공시 오류가 제약바이오 기업 전반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낮출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실무적으로 봤을 때는 금액이 적거나 정보 이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좀 적은 경우에는 굳이 정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면서 "하지만 보통 이런 경우에도 주석 등을 이용해 이전 공시가 왜 틀렸다, 어떻게 정정했다 하는 식으로 표시를 해놓는 경우가 많다. 그런 표시를 하는 게 투자자 입장에서는 혼동의 여지가 없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다음 분기 보고서가 나왔다고 직전 분기 보고서 오류를 정정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