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쌓아낸 주인의 세계...윤가은 감독 “그저 보고, 듣고, 느껴달라”

2025-10-23

22일 개봉한 윤가은(43) 감독의 신작 장편영화 ‘세계의 주인’은 열여덟살 고등학생 ‘이주인’의 이야기다.

평범한 듯 특별한 주인(서수빈)의 일과는 이렇다. 등교 후엔 인싸(인사이더) 학생으로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휘어잡는 매력을 발산한다.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우스꽝스러운 춤을 휴대폰으로 촬영하며 놀거나, 생리통이 심하다며 탐폰 사용 후기를 공유한다. 틈틈이 애인 찬우와 사랑 가득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교 후엔 마술에 꽂힌 동생 해인의 학예회 연습을 구경하다 집을 치우고 빨래를 갠다. 가끔 엄마가 원장선생님으로 있는 유치원에 놀러 갈 때도 있다. 가끔 스트레스를 풀고 싶으면 태권도장에 간다. 그렇게 주인은 하루하루를 쌓아왔다. 어떤 사건이 생긴 ‘그날’로부터.

그러다 주인의 세계에 균열이 생긴다. 학교 친구 수호가 돌리는 서명지를 받은 것이다. 전교생이 이름을 적은 ‘성범죄자 입주 반대 서명’에 주인은 이름을 쓰지 않는다. “틀린 말 고칠 때까지 나는 여기 서명 못 해.” 주인은 이렇게 소리치며 수호를 망신준다. 주인은 왜 이렇게 서명 앞에 완강할까.

윤 감독은 이제까지 어른들이 모르는 새 한 뼘 크는 ‘어린이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겨왔다. 초등학생 여자아이의 삶과 고민을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 ‘우리들’(2016), 초등학생 친구들이 함께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 ‘우리집’(2019)을 연출했다.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은 ‘우리들’이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사소한 표정의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는 감독의 강인한 각오가 돋보인다.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라며 극찬했다.

그 후 6년 만에 발표한 ‘세계의 주인’에서 감독은 청소년의 세계를 비춘다. 관객의 입장은 전작과 비슷하다. ‘우리들’, ‘우리집’의 관객이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지켜보며 마음을 헤아렸던 것처럼, ‘세계의 주인’의 관객은 학교·집·태권도장을 오가는 주인의 일상을 관찰하며 그를 알아가야 한다. ‘이주인을 알고 싶다’는 궁금증이 러닝타임 2시간을 지루할 틈 없이 채운다. 특히 주인 역(役)의 신인배우 서수빈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지난 20일 중앙일보와 만난 감독은 “오랫동안 10대 여성 청소년이 경험하는 성(姓)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부담스러운 마음에 (그 주제로부터) 도망치다, 세 번째 작품을 고민하던 때에 문득 이 소재가 기억났다”고 했다. 당시 코로나 19로 인해 작품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 감독은 “이것이 내 마지막 영화라면, 용기를 내보자”는 생각을 했고, 본격적으로 ‘세계의 주인’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세계의 주인’은 지난 9월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한국 영화 최초로 초청, 첫 상영을 했다.

이주인이라는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감독은 현재에만 카메라를 비춘다. 이는 주인과 비슷한 일을 겪은 이들을 만나며 “일상을 어떻게 영위해 가는지” 물은 감독의 취재 과정과도 닿아있다.

배우들 역시 과거의 시간보단 현재의 시간을 사는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장혜진 배우는 “‘우리들’로 인연을 맺은 감독과 이번에도 함께하게 됐다”며 “(주인의 엄마인) 태선을 연기하면서 계속해서 ‘오늘의 강태선’은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했다”며 “오늘의 태선이로 살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가 진행되며 관객은 주인의 과거를 자연스레 짐작하게 된다. 감독에겐 그 과정이 중요했다. 윤가은 감독은 인터뷰에서 “(관객이) 내 안의 고정관념을 떠나 한 명의 인물을 직접 체험하고, 보고 듣고 느끼며 그 인물을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이 가능할까. 이 영화를 만드는 내내 이 질문을 마음에 담아뒀다”고 했다. 그래서 감독은 사전 시사회에 온 언론·배급 관계자에게 손편지를 썼다. “(기사에) 주인의 과거에 대한 묘사를 피해 달라”는 내용이자, “주인이를 인간 대 인간으로 먼저 만나게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주인이 지칭한 서명지 속 ‘틀린 말’에 대해 감독은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은 고정관념을 그대로 적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인과 비슷한 일을 겪은 분들을 취재하며 들은 이야기를 녹여내기도 했고, 댓글에 자주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도 참고했다. 고정관념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겼을 때 관객의 마음에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했다.”

‘세계의 주인’의 영어 제목은 더 월드 오브 러브(The World of Love)다. 감독은 “주인이라는 인물은 살아오면서 사람과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이지만, 스스로 혹은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 용감히 상처를 회복한다”며 “주인이 경험하고 있는 세계, 앞으로 경험할 세계가 ‘사랑의 세계’이길 바라면서 영어 제목을 지었다”고 했다. 120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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