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 “내 뿌리는 저항가요···비굴해지지 않으며 음악해왔다”

2025-10-23

“미쳐 돌아가네/ 매국노들의 세상/ 극우 반동들의 세상/ 오만한 검폭들의 세상”(안치환 ‘인간계’ 중)

가수 안치환의 노래는 여전히 거침없다. 지난 15일 발매된 정규 14집 <인간계(人間界)>에는 동명의 곡 ‘인간계’를 비롯해 ‘빨갱이’ ‘오늘도 또 노동자가 죽었다네’ ‘껍데기는 가라’ 등 사회비판적인 곡이 실렸다.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참꽃스튜디오에서 만난 안치환은 “14집까지 오는 데 3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노래의 힘을 믿으며 내 나름대로 음악을 잘해왔다고 생각한다”며 “스스로 기특하다”고 했다.

안치환은 윤석열 정부 집권 시기를 ‘인간의 흑역사’ ‘인간성의 암흑기’라고 표현했다. 시대와 역사에 대한 실망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가장 부끄러운 민낯을 봤다는 것이다. “문명은 발전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절대 진보하지 않아요. 다만 인간이라면 그것을 뛰어넘는 인간정신을 갖고 공동선을 위해 살아가죠.” 그 믿음이 무너졌을 때, 분노를 느꼈다. “(12·3 불법계엄이) 성공했다면 지금 어떤 세상이 됐을까요. 끔찍하죠.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고 끝내 정리를 해야 합니다.”

이번 앨범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직접 겨냥한 노래도 담겼다. “그대는 어쩌다 한 나라의 수장이 돼버렸잖아/.../ 옆에 붙어 다니는 저 여산 또 뭐야”(쪽팔리잖아!), “뭘 이런 걸 다/ 디올 여인/ 오 마이 갓/ 멘털은 yuji(유지)된 거니”(다크코어) 등이다.

그는 이재명 정부로의 정권교체 후 “마음은 편해졌다”고 했다. “마음의 평화를 얻었어요. 예전에는 평화라는 거 거창하게 생각했거든요. 전쟁의 반대말로서의 평화. 근데 그게 아니고, 평화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더라고요. 마음 편히 밥 먹고, 노래하고, 책 읽고, 가족과 일상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기본 조건이요. 아주 작은 평화.”

하지만 그는 자신을 진보주의자로 정의하지 않았다. ‘인간계’에도 “미쳐 돌아가네/ 위선자들의 세상/ 무늬만 진보주의자들의 세상/ 찌질한 먹물들의 세상”이란 가사가 있다. 그는 “나도 어느 부분에선 굉장히 보수적”이라며 “진보가 다 옳다고 생각하지도, 보수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진보 성향의 유튜브에서 출연 제의를 했지만 거절했다고 했다. “구독자 수 갖고 먹고 살면, 소명의식이라든지 대의라든지 공동선에 대한 투철한 자기의식을 가지고 있을까요.”

안치환은 자신의 뿌리를 ‘저항가요’라고 했다. 상업적인 홍보보단 노래 자체가 갖는 ‘대중적 장악력’을 믿고, 콘서트를 통해 관객을 만나며 노래를 알려가는 데 주력했다는 것이다. 그는 “독립군적인 느낌도 있고, 고립되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방향대로, 내가 지키고 싶었던 내 모습대로 (음악을) 해왔다”고 했다. “저는 오래 전에 나무를 심었어요. 그래서 그 나무의 그늘 속에서 나의 자존심과 내 음악적인 세계를 지키면서, 비굴해지지 않으면서 음악을 해올 수 있었어요.”

안치환은 연세대 재학시절 노래패 ‘울림터’를 시작으로 1986년 노래모임 ‘새벽’,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을 거쳐 1989년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앞두고 만든 노찾사의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1989)는 발매 당시 약 2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안치환은 ‘내가 만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로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변절자라는 비판을 일각에서 받기도 했다.

“우리는 많이 싸웠어요. ‘음악운동이냐, 운동음악이냐’ 이런 걸로 세미나를 열었어요. ‘음악이 먼저냐, 운동이 먼저냐’ 하고 싸우는 거죠. 저는 음악이 먼저예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음악이 무슨 힘을 가집니까. 그런 힘 없는 음악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무기가 되고 힘이 될 수 있습니까.”

안치환에게는 늘 ‘민중가수’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그는 “민중가요라는 말은 세상에 없다”고 했다. 그는 “민중이라는 말은 함부로 쓰는 말이 아니다”라며 “아무 문제의식 없이 쓰면 안 된다”고 했다. 2030 세대가 주축이 된 지난해 탄핵집회에서는 K팝이 울려퍼지며 ‘탄핵 플레이리스트’가 공유되기도 했다. 엄혹한 시절 광장에서 불린 ‘민중가요’의 자리를 K팝이 대체한 것이다. 안치환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의 시대, 지금의 사람, 그들의 정서, 그들의 선택”이라고 표현했다.

그에게 ‘사람은 정말 꽃보다 아름다운가’ 물었다. “살다 보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도 만나고, 꽃보다 아름답지 않은 사람도 볼 겁니다. 생이 끝날 때까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지 확실한 매듭을 짓지 못하겠죠. (하지만) 노래는 희망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냐고 물어본다면, 그런 세상을 만들자는 저의 외침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는 흐르는 물처럼 살아있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했다. 때론 엄혹한 시대와 싸우고, 때론 ‘그대 위해 비가 되고 싶은’ 마음을 노래했던 그는 이제 동년배들에게 위로를 주는 노래도 부르고 싶다. “저는 20대 때 30대 이후의 삶을 상상하지 못했어요. 근데 지금 제 나이가 60이네요. 우리 세대를 응원하는 노래를 내년에 발표할 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지 않으면 누가 해줍니까. 애쓰고 살았는데, 우리 이제 행복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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