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불똥 '3차 중일전쟁'과 한반도에 닥친 도전

2025-12-01

[서울=뉴스핌]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대만 타이베이에는 도요타 자동차와 패밀리마트 등 일본계 편의점이 서울보다 훨씬 많이 눈에 띈다. 대만인들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은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일본에 호감을 나타낸다. 중국 본토에서는 랴오닝성 다롄 지역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유난히 우호적이다. 중일관계가 악화될 때면 중국내 일본 거주민들이 신변 안전을 위해 다렌으로 모여들 정도다.

흥미롭게도 대만과 다롄 두곳은 모두 중국이 청일전쟁(1894년)에서 패한 뒤 일본에 할양된 곳이다. 중국(당시 청)은 청일전쟁에서 패함으로써 굴욕적인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함께 대만과 랴오둥(요동)반도 까지 일본에 내줘야했다.

1840년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영국에 내준 중국이 반세기만에 또다시 대만과 본토 요동반도 까지 일본에 빼앗긴 것이다. 청일전쟁은 조선과 중 일을 비롯한 아시아 정세에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무엇보다 이 전쟁은 수천년간 지역 중심국가였던 중국의 쇠퇴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청일전쟁의 결과로 조선의 운명도 청나라에서 일본의 영향권(지배권)에 들어간다. 일본은 1905년 강압적인 을사늑약을 통해 외교 주권을 박탈하고 조선에 대해 전면적 식민지배에 나선다.

청일전쟁후 근 반세기 후인 1937년 중국에서는 노구교 사건(베이징 인근서 중일 군대 충돌)이 도화선이 돼 중일전쟁이 발발한다. 일부 전쟁 전문가들은 성격상 1894년 청일전쟁을 1차 중일전쟁으로, 1937년 중일전쟁을 2차 중일전쟁으로 규정한다. 2차 중일전쟁은 일본이 1931년 만주사변에 이어 전면적인 중국 침략에 나선 전쟁이다.

일본은 1937 중일전쟁에서 삽시간에 난징까지 점령하고 같은 해 12월 13일 3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난징 대도살'을 자행한다. 하지만 일본은 1945년 중국의 장개석 국민당 정부와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연합국에 항복하고 중국에서 물러난다.

1차 중일전쟁이라고 하는 청일전쟁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청국과 일본이 벌인 전쟁으로 전쟁의 결과 조선은 30여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로 접어들었다. 다시 근 반세기만에 발발한 태평양전쟁에서 연합국이 승리하면서 중일전쟁도 끝이 났고 대만과 조선도 모두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다.

1945년 일본의 항복 이후 중국 대륙에서는 국공내전이 발발했고, 이 전쟁에서 패배한 국민당 장개석 군대는 대만으로 피신해 근거지를 구축했다. 이로써 대만은 영토 완정성을 꿈꾸는 중국 공산당에게 두고 두고 골치아픈 난제가 됐다.

베이징시내 5.4 거리 인근 옛 베이징대학 캠퍼스 홍루 건물에는 1949년 1월 인민일보 1면에 실린 마오쩌둥의 사설이 전시돼 있다. 사설에서 마오는 장개석이 대만으로 피신해 근거지를 마련한 것을 두고 대만을 해방하지 못하면 완전 해방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중국 공산당에게 대만 통합이 얼마나 중요한 사명인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와 관련해 공산당과 대만의 국민당은 지난 1992년 하나의 중국에 대한 기본 원칙, '이른바 92 공식'을 도출했다. '92공식'은 하나의 중국을 기본 전제로 '양안 통일'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로 여겨진다. 하지만 현 집권당인 민진당은 이런 원칙을 무시하고, 대만 독립을 추구함으로서 양안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공산당의 집권과 영토 주권 등을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야하는 핵심 이익으로 내세운다. 서방 세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대만과 시짱(티베트) 독립 문제를 이슈화 하면서 중국 내정을 간섭했는데 중국은 이때 당장이라도 올림픽을 반납할것 같은 기세로 완강하게 맞섰다.

중국은 11월초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유사시 대만 개입' 시사 발언을 대만이라는 내정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분개하고 나섰다. 1971년 중일 수교 정신을 전면 부정하고 태평양전쟁 이후 국제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라며 문제의 발언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발언의 당사자인 다카이치 총리는 중국의 이런 요구를 수용하기는 커녕 갈등과 마찰을 오히려 자신의 정치 자산화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 신사 참배와 위안부 문제 왜곡, 또 30만명 난징학살에 대한 왜곡 발언으로 중국및 주변국과 마찰을 끊임없이 증폭시켜왔다.

일본내에서도 도를 넘는 다카이치 총리의 과거사 왜곡과 특히 대만 문제에 대한 과격한 발언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유사시 대만 개입' 시사 발언을 철회해야한다는 주장과 함께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는 대치국면에 대해 출구전략을 찾아야한다고 주장한다.

11월 말 일주간 1000편 가까운 중국발 일본행 항공편이 취소된데 이어 12월 한달 중국항공(CA)이 일본행 약 900개 항공편이 전면 취소될 것이라는 애기가 중국 항공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이대로라면 중국인들의 일본 여행은 물론 팬데믹(코로나19) 때처럼 중일간 하늘길이 끊길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중 관세전쟁 처럼 중일간에도 경제와 외교전이라는 총성 없는 전쟁이 점점 격렬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중일 갈등이 여행업계에 반사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낙관하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 중일 관계 악화로 적지않은 중국 유커(관광객)들이 일본 대신 한국과 동남아 국가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 '1차 중일전쟁' 격인 청일전쟁(1894년)과,' 2차 중일전쟁(1937년)'이 한국을 교두보 삼아 일본이 도발한 전쟁임을 돌아볼때 지금 대만문제를 놓고 충돌한 중일 접전을 한가하게 관광 수입이나 챙기면서 강건너 불보듯 여길 사안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중국과 일본 두나라 갈등으로만 보이는 '대만 문제'는 앞으로 3차 중일 전쟁으로 비화하는 화약고가 될 지 모른다. 그리고 그 불똥과 화염은 어느 순간 한반도로 날아들지 모른다. 과거 대륙을 향한 일본의 야욕이 빚어낸 1차 중일전쟁 청일전쟁과 2차 중일전쟁을 돌아볼때 한반도는 여지 없이 그 대 변국의 중심에 있었다.

'1, 2차 중일전쟁' 때 처럼 그 소용돌이가 일으키는 거대한 지각변동은 한반도 운명을 통째 삼켜버릴 수도 있다. 신흥 제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과거사 부정 왜곡을 넘어 다시 호전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섬나라 일본. 양상은 다소 바뀌었어도 강경 대치중인 힘센 두 나라의 이해 충돌과 우리 한반도가 안고있는 지정학적 도전은 옛날과 조금도 다를게 없어보인다.

서울= 최헌규 중국전문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chk@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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