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 근육’ 이유 있었다…찐 운동권 정성호의 속사정

2025-07-06

이재명의 사람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대한민국을 뒤흔들던 1987년 1월의 어느 날.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 입소를 앞두고 있던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이하 경칭 생략)의 집 전화기가 세차게 울렸다.

여보세요?

나야, 원식이.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서울대 법대 81학번 동기인 최원식 전 의원의 것이었다. 둘은 서울대 학생운동권으로 함께 가두시위를 벌이는 등 막역한 사이였다. 그 역시 함께 사법시험에 합격, 연수원 동기가 될 참이었다.

둘은 서울 서초동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그해 3월 ‘노동법학회’라는 비공식 모임을 만들었다. 곧이어 서울대 법대 선배였던 문병호 전 의원이 들어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서울대 법대 후배인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과 고려대 법대 운동권 출신인 문무일 전 검찰총장도 합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체불명의 연수생 한 명이 모임에 참석했다. 학생운동권 출신이 전체 연수생의 3분의 1에 달했던 18기였지만, 그는 학생운동을 경험한 적이 없을뿐더러 그 시절 운동권이라면 섭렵했을 사회과학 서적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정성호가 동기생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무도 답이 없었다. 그렇게 신원조사(?)가 시작됐다. 신입의 정체는 이재명 대통령. 대화가 오가면서 이 대통령이 과거 어려운 형편 속에서 소년 노동자로 일했고,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대학에 입학해 사법시험을 준비했다는 대강의 인생 스토리가 드러났다. 그날에 대한 정성호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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