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포퓰리즘적 극단 정치가 전 세계를 휩쓰는 가운데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기술의 발달은 기존 일자리와 사회 시스템을 뒤흔든다. 또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거짓과 진실이 뒤섞인 채 문화·민족성·젠더·종교 등에 관한 정체성 충돌이 과격하게 진행돼 사회적 유대를 훼손하고 있다. 세계 정세는 또 어떤가. 지난 70년 간 유례 없는 일극 체제를 지켜온 미국이 정치·경제적 분열로 흔들리며 강대국 간의 패권 전쟁이라는 본질적 긴장 관계로 회귀 중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강대국 지위 복귀를 꾀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새로운 초강대국으로 부상했다.
CNN의 간판 앵커이자 국제 문제 전문가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이 모든 현상을 혁명의 징후로 해석한다. 그는 10년 간의 연구 끝에 펴낸 신간을 통해 지금을 현대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시기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 격동을 이해하기 위해 1600년대 이후 혁명의 400년사를 들여다본다.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 책에서 전반부는 과거 주요 혁명에 대한 역사적 연구로 채워진다. 17세기 최초의 자유주의 혁명이자 네덜란드를 부국으로 이끈 네덜란드 혁명부터 자유와 평등을 외친 급진적인 혁명으로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피의 유산을 남긴 프랑스 혁명, 영국과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든 산업혁명 등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역사를 가로지르며 하나의 패턴을 발견하는데 바로 모든 진보에는 역풍(backlash)이 쌍둥이처럼 따라붙는다는 것이다. 진보가 빠르고 강할수록 변화에 저항하는 역풍도 강해진다.
이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오늘날의 극심한 혼란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우리가 현재 세계화, 정보(기술), 정체성, 지정학 등 4가지 혁명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일례로 세계화 혁명은 인류에 큰 이익을 선물했지만 너무 빠르게 진행되며 부가 일부에만 집중되는 극심한 불평등을 낳았다. 관세 장벽을 쌓아 개방 경제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이런 세계화에 대한 역풍인 셈이다. 또 이민, 다양성, 젠더 등 정체성 혁명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면서 가족 및 신앙심 등 전통적 가치를 가진 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저자는 특히 이 두 혁명이 오늘날 정치적 논쟁의 축을 ‘좌파 대 우파’에서 ‘개방 대 폐쇄’로 재편하고 있다고 통찰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반발에도 혁명이 성공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저자가 말하는 것은 ‘속도 조절’이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포용감 있는 정책을 통해 뒤처지는 자들까지 보듬으며 반발을 다스려야 한다. 저자는 역풍이 불어도 결국 역사는 진보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진보의 길에서 후퇴할 경우 모두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에 역풍이 고조되지 않도록 적절한 관리와 수용이 필요하다고 짚는다. 3만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