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업이 글로벌 슈퍼사이클을 맞으면서 국내 선박엔진 제조 기업들의 고부가 친환경 엔진 수주가 날개를 달고 있다.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친환경 엔진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이중연료(DF) 엔진 분야에서 선도적 기술력을 갖춘 국내 업체들이 각국 선사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선박 엔진 업체 인수·합병(M&A)을 통해 업계 ‘투 톱’을 굳힌 HD현대(267250)와 한화(000880)는 신제품 개발과 설비 증설 등 신규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329180)의 지난해 1월부터 올 2월까지 선박엔진 수주액(53억 8800만 달러) 중 친환경 DF 엔진의 비중은 70% 이상을 차지했다. HD현대중공업의 주력인 대형 엔진의 경우 수주액의 78%가 DF 엔진이다. 독자 기술로 개발한 중형 ‘힘센 엔진’ 역시 DF 엔진 비중이 71%에 달한다. HD현대중공업의 엔진기계 부문 매출은 친환경 엔진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3조 1344억 원을 기록했다. 2022년(1조 7151억 원) 대비 2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한화엔진(082740) 역시 친환경 엔진 중심으로 수주가 잇따르고 있다. 한화엔진의 지난해 선박엔진 수주 금액(1조 5944억 원) 중 DF 엔진은 1조 3151억 원 규모로 82%를 차지했다. 한화오션은 올 들어 아시아 선사로부터 약 8500억 원 규모 엔진을 신규 수주했다. 지난해 중국발 선박엔진 수주의 90% 이상이 DF 엔진인 점을 고려하면 올 해 수주도 상당 부분 친환경 엔진으로 추정된다.
DF 엔진은 기존 중유와 별도로 액화천연가스(LNG), 메탄올 등 친환경 연료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엔진으로 국내 제조사들이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유럽연합(EU)이 해양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확대하고 있는 데다 국제해사기구(IMO) 역시 올 해부터 강화된 환경 규제를 적용했다. 이에 대만 양밍해운이 이달 LNG DF 컨테이너선 13척을 한 번에 발주하는 등 글로벌 해운사들의 친환경 연료 도입 움직임은 가속화하고 있다.
엔진 가격 상승세가 올 해 이어질 것으로 전망돼 제조사들의 수익성 개선 기대감도 크다. 친환경 엔진은 영업이익률이 높은 고부가 제품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신조선가가 지난해 4분기 역대 최고 수준에 근접한 것을 고려할 때 올 해 엔진 가격이 평균 5%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엔진 가격은 신조선가를 반년 정도 후행한다.
국내 주요 선박엔진 업체들은 친환경 엔진 시장 성장세에 대응해 제품 개발과 증설 등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1월 세계 최초로 고압 직분사 방식의 암모니아 DF 엔진 개발에 성공해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HD현대그룹은 STX중공업(현 HD현대마린엔진(071970)) 인수 후 중형엔진 제작을 넘기고 대형엔진 제작은 HD현대중공업에 집중하며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한화엔진의 경우 지난달 선박엔진 생산 능력을 확충하려 802억 원을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한화엔진은 2023년 한화그룹에 인수된 HSD엔진에서 탈바꿈한 후 DF 엔진 생산시설을 지속적으로 증설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불황기 생산능력이 크게 줄었던 국내 업체들이 선박 엔진 부족 상황과 수주 확대에 힘입어 증설에 나서는 모습”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