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서 매일 누르는 층 버튼을 누른다. 고된 영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혼자 탄 엘리베이터 안에는 무거운 적막이 흐른다.
무심코 들여다본 거울 안에는 익숙한 듯 낯선 얼굴이 있다. 잘생겼다는 소리는 못 들었어도 젊을 땐 나쁘지 않았는데, 머리가 벗어져 훤해진 이마를 머쓱하게 더듬어 본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할머니와 부모 형제까지 다섯 식구가 부대끼며 지냈다.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형제가 방을 따로 쓰는 친구 집에 놀러가기 전까지는.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해야지. 성공해서 꼭 내 방이 있는 집을 사야지’ 그때부터였다. 누가 정했는지 모를 ‘평균’의 압박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 건. 학창시절엔 이 말이 귀를 맴돌았다.
졸업하고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은행에 취업했다. 그러자 이 말이 귀에 꽂혔다.
이 정도 돈은 벌어야지
악착같이 대출 영업을 뛰었다. 남들보다 이른 승진에 월급도 껑충 뛰었다. ‘이젠 됐겠지’ 싶었는데 이 말이 머릿속에 울렸다.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했다. 남들이 길 가다 슬쩍 곁눈질하는 외제 차도 샀다. 집에는 아내와 예쁜 딸이 기다리고 있다. 내 나이 40대에 남부럽지 않은 조건을 모두 갖췄다.
그런데 이상하다. 부족한 걸 채우고 또 채워도 공허하다. 내 삶은 ‘이 정도’를 향한 끊임없는 몸부림이다. 그 몸부림의 끝에는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 남았다.
※이현정, 『외로움의 모양』(가능성들) 중에서

바쁜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느껴지는 외로움에 긴 한숨을 내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위 사례는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가 만난 40대 남성 가장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이 교수는 2년 전, 전국의 20~50대 남녀 12명을 심층 인터뷰해 외로움의 원인을 탐구했습니다.
이 교수는 “한국인의 외로움은 한 가지 색이 아니라 총천연색”이라고 말합니다. 같이 사는 가족이 있어도, 돈이 많아도 저마다의 이유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죠. 이 교수는 정신장애와 사회적 고통을 연구하는 의료인류학자입니다. 최근엔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이중고를 겪는 중년의 외로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안정기에 접어든 한국의 중년이 외로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외로움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을 직접 만났던 이 교수는 “어린 시절 특정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외로움을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중년 남성들은 ‘이것’이 없으면 쉽게 외로움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어떻게 해야 외로움의 굴레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자녀를 독립시키는 대신 같이 살면 외로움을 피할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외로움을 이 교수가 이겨내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런 내용을 담았어요🫂
📌 ‘이 경험’ 있는 사람, 외로움 더 느낀다
📌 “열심히 살수록 외롭다” 한 가장의 고백
📌 ‘이것’ 없는 중년 남성, 돈 많아도 외롭다
📌 독립 안 하는 자녀, 같이 살면 좋을까
📌 외로움을 이겨내는 이 교수의 비결
🎙진행 : 박건 기자
🎙답변 :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왜 외로움에 주목했는가.
일찍이 자살, 우울증, 세월호 참사 등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겪은 사람들을 주로 연구해 왔다. 그들 안에는 트라우마도 있지만, 외로움이라는 큰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외로움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영국 정부에 ‘외로움부’가 생겼을 정도라니 이 연구를 계속 진행할 필요성을 느꼈다.
외로움의 양상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나.
삶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외로움을 느낀다는 사람들을 실제로 인터뷰해 봤는데,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와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의 양상이 제각기 달랐다. 누구는 주변 사람이 자신에게 압박을 줘서 외롭고, 누구는 자신이 주변과 동떨어진 섬같이 느껴져서 외롭고, 누구는 자신이 사회가 말하는 ‘정상적인’ 역할을 못 하는 것 같아서 외롭다고 말한다. 한국인의 충족되지 못한 결핍과 불안, 우울한 상태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으로 표현된다고 느꼈다.
흔히 ‘외로움’이라고 하면 1인 가구만이 겪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