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에 거주하는 30대 A 씨는 지난달 금을 거래하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염증 때문에 뺀 금니를 팔았다. 휴지로 감싼 금니를 등기우편으로 보내자 하루 뒤 1.5g이 표시된 저울 사진과 함께 7만 5000원이 계좌로 들어왔다. A 씨는 “금값이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 서랍에 넣어둔 금니가 바로 생각났다”며 “절차도 간편해서 큰 노력 없이 용돈을 번 기분”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을 타고 대표 안전자산인 금 가격이 연일 치솟으면서 국내에 다시 ‘금테크’ 열풍이 불고 있다. 1g 남짓한 금니를 판매하거나 값을 더 쳐주는 매입 업체 리스트를 공유하는 등 이전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소소한 금’까지 현금화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모양새다.
10일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순금 한 돈(3.75g)의 매입가는 70만 7000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달 9일 65만 9000원에서 한 달 새 5만 원 가까이 뛰었다. KRX금시장에서 이날 오후 2시 38분 기준 금 1g 현물 가격은 16만 6920원으로 올 2월 14일 기록한 최고가(16만 3530원)를 넘어섰다.
가파른 상승세에 귀금속 시장에는 평소 보관해둔 금을 판매하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 올 8월을 기점으로 각종 커뮤니티에는 ‘학생 때 끼던 커플링도 팔았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 금반지를 믿고 팔아도 되느냐’ 등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택배를 통해 묵혀뒀던 금니를 거래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금니는 크라운·인레이·포세린 등 치료 방식의 차이 또는 순금 함량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1000원이라도 더 받기 위한 소비자들의 업체별 시세 비교도 예전보다 활발한 편이다.
경기 안양시의 한 금 매입 업체는 “최근 금니 판매 문의량이 5~6월보다 20%가량 늘었다”며 “어제 하루에만 문의 글이 40건 넘게 올라왔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체는 “온라인 거래에 능숙한 3040세대가 주요 고객”이라며 “14k 크라운이 10만 원 안팎에 불과해 마진이 크지는 않지만 온라인으로 여러 개를 사들이면 업체 차원에서도 이득인 편”이라고 설명했다.
금값이 급등하면서 치과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치과 관계자는 “금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바람에 올해 초부터 금니 치료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금니 대신 지르코니아나 세라믹 등 대체재를 권하는 곳 또한 늘어나는 추세다. 서대문구 치과의사 이 모 씨는 “금니보다 저렴한 55만 원 정도의 지르코니아를 주로 추천한다”며 “예약 후 진료를 기다리는 1주일 새 몇 만 원씩 오를 정도니 병원 역시 부담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금 투자 열기가 뜨거운 반면 금은방은 대체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귀금속 상가에 방문한 손님은 10명이 채 안 됐다. ‘금 매입도 하느냐’는 질문에 ‘판매만 한다’는 답을 듣자 발길을 돌리는 고객도 있었다. 27년 동안 금 도매업에 종사한 박 모 씨는 “요즘에는 금은방을 통한 실물 거래보다 온라인 투자가 대세인 것 같다”며 “손님이 몰릴까 싶어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예상보다 조용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실제 금 투자 수요는 온라인에 집중되고 있다. KRX금시장의 거래량은 전날 처음으로 1톤을 넘어섰다. 하루 금 거래 대금 역시 1794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스콤 ETF 체크에 따르면 최근 1주 새 국내 증시에 상장된 금 상장지수펀드(ETF) 5종에 유입된 자금은 438억 원에 달했다.
온라인 금 투자가 성행하자 관련 사기 위험성 또한 커지고 있다. 부산경찰청은 7월 필리핀에서 가짜 금 거래 투자 사이트를 운영해 100억 원을 가로챈 일당을 구속했다. 이들은 ‘금 해외 선물에 투자하면 200% 수익을 보장한다’ ‘원금의 2~3배를 단기간에 벌 수 있다’ 등의 광고를 내걸어 투자자를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금의 안전자산 이미지가 사기에 악용되기 쉽다”며 “금 자체가 아닌 금을 매개로 한 투자처를 소개하는 사기가 늘고 있는 만큼 개인적인 투자 권유는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