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못 팔면 벌금 수백억"… 유럽 규제에 비상 걸린 車 제조사들

2025-01-08

올해 더 깐깐해진 EU 배출가스 규제… 작년 대비 20% 줄여야

전기차 판매 늘려야… 배출가스 초과시 그램당 14만원 벌금

테슬라, 볼보에 '탄소 크레딧' 구매 후 동맹 맺는 글로벌 업체들

유럽 전기차 할인 경쟁 심화될 듯… 현대차 선택도 '주목'

유럽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는 제조사들이 '전기차를 많이 팔지 못해' 비상에 걸렸다. 유럽연합이 시행 중인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기준이 올해 더 까다로워진 탓에 기존보다 높은 벌금을 물게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준에 부합하는 테슬라, 지리그룹(볼보·폴스타)과 전체 배출가스를 합산하기 위해 거액을 지불하는 '연합군'까지 생겨나는 모양새다.

이에 유럽 시장에 진출해있는 현대차·기아의 선택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대차·기아 역시 그간 배출가스 기준을 맞추지 못해 막대한 벌금을 물어왔다. 올해 역시 배출가스 기준을 달성할 자신이 없다면, 사실상 당장 연합군에 합류하거나 벌금을 내는 방식 중 택일해야하는 셈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이 올해 1월 1일부터 배출가스 규제 기준을 강화하면서 유럽에 진출한 자동차 업체들이 '연합'을 결성하고 있다. EU 배출가스 기준에 부합하는 테슬라, 지리그룹(볼보·폴스타)에 비용을 지불하고, 이들과 탄소배출량을 공동 산출해 전체 배출가스 평균을 낮추는 방식이다.

테슬라로부터 탄소 크레딧을 구매하고, 테슬라와 배출가스를 공동으로 산출하는 '테슬라 연합'에는 스텔란티스, 토요타, 포드, 마쓰다, 스바루 등이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를 중심으로 한 '지리그룹 연합'도 생겨났다. 지리그룹에는 전기차만 판매하는 폴스타와 탄소 배출량이 적은 라인업을 가진 볼보가 포함돼있다.

유럽 자동차 시장이 유난히 떠들썩해진 건 올해 1월 1일부로 배출가스 규제가 크게 강화되면서다. 내연기관차를 줄이고 전기차 전환을 서두르기 위한 규제인데, EU가 정한 기준보다 차량당 탄소 배출량이 초과할 경우 1g당 95유로(약 14만3000원)의 벌금을 내야한다. 배출가스 규제가 강화되면 초과되는 탄소배출량이 많아지므로 더 높은 벌금을 물게 되는 셈이다.

EU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2029년까지 유럽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평균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은 km당 93.6g을 초과해서는 안된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는 km당 95g이었다.

수치상으로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현지 컨설팅 업체들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줄여야 할 배출 가스량이 사실상 20%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NEDC를 기준으로 했지만, 올해부터는 WLTP를 기준으로 탄소배출량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두 테스트 모두 배출가스 측정법으로 분류되지만, WLTP가 NEDC 대비 주행거리, 주행시간, 평균 속도 등 모든 시험 항목에서 더욱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만큼 두 측정법 간 결과의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WLTP 기준으로 작년 배출가스 목표를 재측정하면 116g/km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봤다.

현재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배출가스 규제에 부합하는 제조사는 테슬라와 지리그룹 뿐이다. 테슬라와 지리그룹에 비용을 지불하고 연합에 합류하는 이유다. 테슬라와 지리그룹은 탄소 크레딧 판매로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연합에 참가한 제조사들은 벌금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으니 이해 관계가 잘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현지 애널리스트들은 테슬라가 이번 연합에서 제조사들로부터 얻는 수익이 10억 유로(약 1조5062억원)에 달할 것으로 봤다.

유럽에서 전기차, 내연기관차를 판매 중인 현대차·기아 역시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다른 제조사들과 마찬가지로 그간 유럽에서 배출가스 규제를 충족하지 못했던 만큼, 규제가 강화되면 물어야 할 벌금이 크게 늘어난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기준으로 현대차·기아가 내야 할 벌금이 수백억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올해 강화된 배출 규제 기준을 맞출 자신이 없다면, 선택지는 한정적이다. 높아진 벌금을 무느냐, 테슬라 또는 지리그룹 연합군에 동참하느냐다. 테슬라가 주도하는 연합에 참가하려면 2월 5일까지, 지리그룹 연합은 2월 7일까지 신청해야 해 고민할 시간도 많지 않다.

배출 가스 규제로 인한 유럽 시장 내 제조사 간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벌금을 피하려 연합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초과한 탄소배출량이 많으면 테슬라나 지리그룹에 지불하는 비용도 늘어난다. 근본적으로 배출가스 규제를 피하려면 내연기관 판매는 줄이고, 전기차를 많이 파는 게 정답이다. 강화된 기준에 근거하면 올해 배출가스 규제를 맞추기 위해선 전체 판매량의 최소 5분의 1이 전기차여야 한다.

이에 따라 '제 살 깎아먹기'의 형국이 될 지라도 전기차 가격을 할인하는 제조사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전기차 보조금이 줄고 있거나 폐지된 만큼 소비자들이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를 매력적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결국 제조사의 자체 할인이 불가피하다.

유럽 배출가스 규제에서 가장 불리한 입장인 폭스바겐의 경우 이미 지난해 독일에서 전기 소형차 'ID3'의 가격을 3만유로(약 4520만원) 이하로 낮춘 바 있다. 또 최근 르노그룹 산하 브랜드인 다치아는 프랑스에서 저가형 스프링 전기차의 가격을 2000유로 인하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가격 경쟁을 불러온 테슬라의 경우 전기차 판매 경쟁이 치열해지면 언제든 가격을 낮출 가능성이 있다.

이항구 전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유럽연합은 배출가스 규제가 그동안 유럽에서의 탄소배출을 줄이는데 큰 효과가 있었다고 믿고 있고, 앞으로 더욱 강화될 일만 남았지만 막상 준비된 제조사는 거의 없다"며 "현재 탄소배출량 뿐 아니라 앞으로 수년 내 '유로7'이 시행되면 타이어, 부품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까지 규제 범위에 포함된다. 현대차·기아의 존속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컨설팅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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