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전환] 기후 위기, 지역의 렌즈로 다시 보기

2025-06-26

“그 사업을 왜 하는 거예요. 누가 보겠어요?”라는 말을 기자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빈정거리는 말투 속에는 언론에 대한 불신과 회의감이 그 스스로에게 뿌리 깊게 있는 듯했다. 그가 말한 사업은 ‘지역언론 기후 보도 취재 지원’이다. 녹색전환연구소와 리영희재단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으로, 한국 언론이 지역별 특성에 맞는 기후 문제를 심층적으로 취재할 수 있도록 지역언론사 1곳당 400만 원을 지원한다.

실험적으로 진행한 올해 사업에는 총 5곳이 선정됐다. 그 기자는 이 사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관공서 중심의 기존 출입처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추가 인원을 보강하지 않는 한 지역 밀착형 기획취재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관공서가 쏟아내는 보도자료를 하루에 5건 이상 소화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좋은 기획을 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좋은 기획을 하고 싶던 젊은 청년 기자들마저 하나둘 수도권으로 떠나는 것이 현실이다.

나 역시도 이 사업을 기획하며 여러 현실에 부딪히게 됐다. 먼저 지역언론 내 기후 보도 건수 자체가 적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빅데이터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등록된 지역언론 수는 49곳. 이들 49곳의 ‘기후변화’ 언급 뉴스 건수는 2024년 1만1480건이었다.

중도일보가 853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부산일보(610건)와 충청일보(494건)가 뒤를 이었다. 가장 적은 곳은 홍성신문(8건)이었고, 이어 경기신문(17건)과 평택시민신문(20건) 순이었다. 물론 경기신문과 평택시민신문은 실제로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기후변화를 좀 더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사실 건수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중도일보조차 대개는 관공서 보도자료나 정치인들의 발언에서 한 번 언급된 ‘기후변화’를 따옴표 형태로 넣는 것에 그쳤다. 혹은 여름철 폭염이나 홍수에 맞춰 기후재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칼럼 소개가 전부였다. 지난해 기후변화를 언급한 뉴스 1만1480건 중 지역 문제와 제대로 연결한 기후 보도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정작 시민들은 양질의 기후 보도를 원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2024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3%는 현재 국내 기후변화 보도에 대해 ‘내용이 반복적이고 새롭지 않다’고 답했다. 또 ‘국내 문제보다는 해외 현상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응답도 62.9%로 집계됐다. 수용자, 즉 시민들을 위해서는 기후 보도가 더 체계적인 정보와 지식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올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좋은 기후 보도가 ‘지역’에서 나온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지역과 기후변화에 초점을 둔 기후 보도일수록 대중으로부터 높은 관심을 끌어냈다는 비법도 담겨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기후 위기는 조회 수를 떨어뜨리는 주제일지 모른다. 애초에 너무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인 만큼, 어디서 시작해야 할 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방대한 출입처와 한정된 취재인력, 여기에 광고 수익 압박이 큰 지역언론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걸지도 모른다. 유력 중앙지나 방송사들조차 기후 문제에 진심인 소수 기자 몇 명이 편집국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 기후 저널리즘의 현실이다. 좋은 기후 보도를 만들자고 말하는 순간, 한국 언론 시스템의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그렇지만 작지만 변화를 만들려는 곳은 늘 존재한다. 이번 지역언론 기후 보도 취재 지원 사업에 공모한 한 영남 지역 언론사 기자는 기후는 아이템이 아닌 ‘관점’이라고 답했다. 정치·경제·사회·산업·문화 등 모든 이슈를 ‘기후 렌즈’로 바라보고자 편집국 전체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이 문화를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과 토의가 필요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다른 한 언론사 기자는 시민들에게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스토리를 전달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지역 주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방법으로 기후 대응을 하고자 노력 중인지 계속 기록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국내에도 좋은 기후 저널리즘을 시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여럿 있다. 당장 한국언론진흥재단만 해도 언론인을 대상으로 기후 보도 연수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리영희재단처럼 양질의 기후 보도를 지원하기 위한 곳도 많다. 녹색전환연구소를 비롯한 기후 싱크탱크들 역시 지역언론인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국 지역에서의 좋은 보도는 지역에서만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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