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지구 종말로 지루한 하루의 끝을 꿈꾸며 [D:쇼트 시네마(104)]

2025-01-06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태완(김태완 분)은 지구가 다른 행성과의 충돌로 하루 뒤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루하루 이 지겨운 삶을 끝낼 수 있는 기회다. 심지어 지구의 종말을 목격한다는 사실이 흥미롭기까지 하다. 태완은 행성이 다가오면 알림을 주는 기계까지 만들었다. 태완은 지구 종말보다 종말 되지 않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두렵다.

또 다른 아르바이트 생 가영(주가영 분)은 그런 태완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영 역시 똑같은 지나가는 하루가 지루하고 밤늦게 술 취한 진상 손님이 지겹지만 종말이라는 걸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런 매일이 지속된다면 지구가 망하는 게 나쁘지 않을 것도 같다.

하루 뒤, 지구 종말이 예정된 날 두 사람은 옥상에 올라가 지구가 종말 하는 걸 같이 보기로 한다. 태완이 만든 기계가 바쁘게 울리기 시작하지만 지구는 평화롭다. 가영은 이 순간, 태완에게 키스를 한다. 사실 가영은 태완에게 관심을 보여왔지만 모태솔로 태완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구와 행성이 부딪치면 폭죽처럼 불꽃이 폭발하며 종말 할 것이라는 태완의 말이 꼭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람이라는 행성이 부딪쳐 거대한 감정의 충돌이 일어났고, 지루하던 하루를 종말 시켰다. 그리고 설레는 내일을 꿈꾸게 했다.

영화는 '지루한 하루의 종말'이라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통해, 반복되는 일상 속 무력감과 작은 변화가 주는 의미를 담아냈다. 태완과 가영, 두 인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의 권태를 견디며 살아가는 인물로, 똑같은 하루를 '견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투영했다.

구정회 감독은 지구의 멸망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배경으로 두 청춘의 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태완의 '종말 되지 않을까 봐'라는 두려움은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과 맞닿아 있다. 지루하지만 지속되기를 바라는 안정감과, 변화를 갈망하는 모순된 심리를 통해 인간 본연의 감정을 포착했다.

가영은 태완과 대비되는 캐릭터다. 가영은 종말이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지루함을 공감한다. 그러나 가영의 키스는 단순히 감정의 표현을 넘어, 무력했던 하루에 작은 반란을 일으킨다. 한 사람을 지구 혹은 행성에 비유해 두 사람의 새로운 사랑을 예고하는 것에서 재치가 돋보인다. 따뜻한 낭만이 이렇게 난데없이 오고 말았다. 러닝타임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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