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암 발생률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서구화한 식습관과 관련된 암이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어 국민 건강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는 ‘콜건적(콜라는 제로콜라로 건강하게 적당히)’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고칼로리 음식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면서도 음료만큼은 제로 칼로리 콜라를 선택하는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보여준다.
균형잡힌 다양한 음식 섭취 중요
영양제보다 자연식품이 바람직
암은 예방·완치·완화 가능한 질병

암 예방에 관한 질문은 다양하다. “어떤 음식을 먹으면 암을 예방할 수 있나”, “주변에 암 환자가 있는데 어떤 식사가 도움되나”, “항암 치료 중에 입맛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질문이 자주 제기된다. 이런 흐름을 타고 암 예방에 좋은 음식과 요리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대중에게 많이 노출된다. 문제는 일부 의료인이 연예인과 함께 출연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건강 기능식품을 홍보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이다.
세계암연구기금(WCRF)은 약 30년 전부터 암 발생과 관련된 식생활 요인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중심으로 연구해왔다. 1997년 발표한 1차 보고서와 2007년 발표한 2차 보고서는 주로 서구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 위주였다. 2017년 발표한 3차 보고서부터는 한국의 연구 결과도 반영했다.
그렇다면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작성한 ‘암 예방 식생활 지침’은 무엇일까. 첫째, 암 예방을 위한 식생활의 기본 원칙은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고,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포함한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이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암은 특정 식품 하나만으로 발생하거나 예방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식품과 영양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영향을 준다. 따라서 특정 식품이 ‘암 예방 식품’으로 불리며 과도하게 소비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특정 음식에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식품을 적절히 섭취하는 것이다.
둘째, 음식을 짜지 않게 먹고, 불에 탄 음식 섭취를 피하는 것도 중요한 예방책이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짠 음식은 위벽을 자극해 염증을 유발하고 위 점막을 손상해 위암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적색육이 암 발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고된 사례도 있다. 물론 서구화된 식습관에서 가공육과 적색육 섭취 증가가 암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육류를 섭취할 때는 직화 구이보다 삶거나 찌는 방식으로 조리하고 탄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육류를 채소와 함께 섭취하면 암 예방에 더 효과적이다.
셋째, 암 예방을 위한 영양소 섭취는 건강기능식품이나 보조제보다 자연식품을 통해 영양소를 섭취해야 한다. 세계암연구기금(WCRF)은 암 예방을 위한 영양 보충제가 암 발생 위험을 줄이지 않으며 오히려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높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특정 영양소를 보충제 형태로 섭취하기보다 건강한 자연식품을 통한 균형 잡힌 영양 섭취가 더 중요하다.
항산화 비타민인 비타민 A, C, E의 보충제가 폐암 사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경고도 주목해야 할만하다.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진행된 ‘ATBC 연구’라는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흡연자들에게 베타카로틴과 비타민E 보충제가 폐암 발생 및 사망에 주는 영향을 조사했다. 베타카로틴 보충제를 섭취한 그룹은 ‘위약(僞藥) 그룹’보다 폐암 발생률과 사망률이 높아지는 결과를 보였다. 흡연자와 석면 노출자에서 이런 위험 증가가 두드러졌다. 이러한 결과들을 종합한 메타분석 연구도 있다.
정부와 국립암센터는 2007년부터 3월 21일을 ‘암 예방의 날’로 지정해 기념해오고 있다. WHO에서 암의 3분의 1은 예방할 수 있고, 3분의 1은 조기 진단 및 치료로 완치 가능하며, 나머지 3분의 1도 적절히 치료하면 완화 가능하다는 뜻에서 3월 21일을 정했다. 암 예방을 위한 식생활 지침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확립됐으며, 이를 실천하는 것이 암 예방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올바른 식생활을 통해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앞으로 관련 정보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더 강화해 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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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 대한암예방학회 회장·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