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없는 성행위는 강간”···일본은 이렇게 ‘부동의성교죄’ 만들었다

2025-04-15

현행 형법상 강간죄를 ‘부동의성교죄’로 개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토론회가 열렸다. 폭행이나 협박 등이 있어야 강간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현행 법 체계를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에는 일본의 시민단체가 참석해 2023년 한국보다 먼저 부동의성교죄를 입법한 일본의 사례를 소개했다.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등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강간죄에서 부동의성교죄로, 일본형법 개정의 의미와 과제’ 토론회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 ‘동의하지 않으면 강간’이라는 내용을 담은 ‘부동의성교죄’를 입법해 시행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일본에서 로비와 캠페인 활동 등으로 부동의성교죄 법안 통과를 이끈 시민단체 ‘사단법인 스프링(Spring)’의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일본에서는 2023년 강간죄 명칭을 부동의성교죄로 바꾸고 동의하지 않은 성행위를 처벌할 수 있게 하는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범죄 구성 요건으로 ‘동의하지 않는’이라는 문구와 함께 ‘폭행 혹은 협박이 있는’ ‘심신장애를 일으키는’ ‘알코올 혹은 약물을 복용시키는’ ‘수면, 의식을 몽롱하게 하는’ ‘거절할 틈을 주지 않는’ ‘예상치 못한 사태를 직면케 해서 공포, 경악 상태에 빠지게 하는’ ‘학대로 심리적 반응을 하게 하는’ ‘경제·사회적 관계상의 지위에 근거한 영향력에 의하는’ 등의 8가지 예시 행위를 함께 제시한다.

이날 토론에 나온 다도코로 유우 스프링 공동대표는 “처벌 범위를 명확하게 하려고 (부동의성교죄와 관련한) 판례를 1300건가량 분석·정리해 8개의 범죄유형으로 나눴다”며 “예전 조문과 비교하면 행위에 관해 8가지가 명확하게 규정돼 검거와 수사, 기소 단계가 명확해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입법 이전에 ‘성범죄 무고죄가 증가할 것’이라는 등 반대 여론이 거셌다. 다도코로 대표는 “동의 여부가 내심의 문제라 객관적 증거 확보가 어렵다거나, 억울한 무고가 발생한다는 우려가 나왔었다”며 “하지만 억울한 누명은 성범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누명이 발생하는 원인은 수사기관의 문제라는 것과 성폭행 피해의 실태를 법에 정확히 반영해 입증이 어렵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논리를 들어 반박했다”고 말했다.

다도코로 대표는 부동의성교죄 개정 과정에서 중요했던 점으로 연이은 성폭력 사건 무죄 판결에 항의하는 취지로 시작된 ‘플라워 데모’, 언론의 성범죄 사건 관련 보도, 입법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를 참여시킨 것 등을 꼽았다. 다도코로 대표는 “이런 노력을 통해 성폭력 실태가 가시화되고 ‘피해자 동의’ 여부를 조문에 포함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부동의성교죄가 도입된 뒤에도 여전히 과제가 남아있다고 했다. 일본 부동의성교죄는 ‘No means No’(부동의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성관계로 나아간 경우)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스프링은 현 법제가 ‘Yes means Yes’(적극적인 동의 의사가 없음에도 성관계로 나아간 경우) 모델까지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당시 두려움, 놀람 등으로 굳어져 저항할 수 없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비동의성교죄의 공소시효는 15년으로 정해져 있다. 다도코로 대표는 “성적 피해를 당한 경우 이를 털어놓는 것은 여러 이유로 큰 어려움이 있고,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까지 30년에서 50년이 걸리는 예도 있다는 사실이 조사결과 드러났다”며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막대한 사회적, 경제적 손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범죄 공소시효가 폐지됐다는 것을 듣고 저희도 희망을 느끼게 됐다”고 덧붙였다.

쇼코 사오토메 스프링 공동대표는 “형법이 개정됐다고 해도 판사나 경찰 등 사법관계자와 국민이 개정된 법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며 “스프링에서는 경찰을 상대로 피해자를 처음 만날 때 무엇이 중요한지, 피해자의 심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면 되는지 등을 롤플레잉(역할극) 형식으로 강의하는 등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22대 국회에서는 비동의강간죄 입법 청원이 5만명의 동의를 받아 소관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비동의강간죄 신설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으나 의안 발의에 필요한 의원 10명의 동의를 얻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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