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경제는 오랫동안 수출 중심의 성장 모델을 유지해왔다. 2024년 기준 수출의존도(GDP 대비 수출 비율)는 36.5%로, 미국(7.1%), 일본(17.6%), 중국(19.1%), 영국(14.1%) 등 주요국과 대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앞세워 글로벌 수출 강국으로 확고한 위상을 구축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결과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 달러를 넘어 4만 달러에 육박하며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했다. 자연스럽게 ‘수출 중심’이던 한국 경제가 부유해진 국민의 소비 확대에 힘입어 ‘수출과 내수의 균형’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기대가 한동안 커졌다. OECD 등 국제기구도 한국의 잠재성장률 둔화를 지적하며 내수·서비스 산업의 비중 확대를 권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대는 팬데믹 이전까지 자본시장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주식시장에서는 소비재·유통·헬스케어 업종이 주목받았고, 사모펀드 시장에서도 이들 분야에 투자가 집중됐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내수시장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면서, GDP 성장률에 대한 내수 기여도는 OECD 주요국 중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1인당 GDP의 증가가 소비력 향상과 내수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명확하다. 고령화와 저출산, 가계부채 증가, 고금리 등 구조적 요인이 지속해서 소비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환율 상승 등 외부 요인까지 겹치면서 내수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크게 늘었다. 특히 최근의 환율 급등은 수입물가를 자극해 향후 내수 시장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흐름은 자본시장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활황인 주식시장에서 기술 기반 수출 기업 중심의 수출주는 강세를 보이지만, 식품·유통·서비스 등 내수 의존 업종의 주가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환율이 장기화되어 ‘뉴노멀’로 자리 잡는다면, 내수 시장의 성장 기대를 접고 오히려 환율 수혜를 누릴 수 있는 수출 기업에 투자자금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모든 내수 기업의 투자 매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부 과감한 투자자들은 ‘수출 전환형 기업’, 즉 이미 수출 역량을 갖추었거나 향후 급격한 수출 확대가 가능한 기업을 발굴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또 수출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산업 구조의 고도화를 통해 부가가치가 커질 여지가 있는 폐기물 처리, 소프트웨어 등 산업에도 관심이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다만, 내수 부진이 단기적으로 극복되지 못하고 구조적 변화로 아예 굳어질 경우, 투자 패러다임의 중심축이 완전히 수출 위주로 옮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