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일제’ 말할 상황 아니다

2025-02-17

예전에 다닌 직장은 근속기간 상관없이 신입사원부터 대표까지 동일하게 연차가 27일이었다. 어느 해 안식월 등 다른 제도를 조정하는 대신 연차제를 바꾼 결과다. 그해 직원 퇴사율이 뚝 떨어졌다. 이 경험을 말하면 “법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꽤 있다. 연차휴가에 대해 ‘처음엔 1년에 15일, 이후로 2년마다 하루씩 늘어난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60조에 그렇게 정해져 있기는 하다. 문제는 이를 마치 ‘국룰’, 즉 국가가 정해준 휴가일수로 오해한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의 최저선을 정한 법이다. 그 선 밑으로 내려가면 규제하지만 그 이상 높아지는 것은 규제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법을 ‘국룰’로 아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그보다 높은 수준의 근로조건을 거의 본 적 없고 심지어 법 규정도 안 지키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반도체특별법 논의 중 ‘주 최대 52시간 노동’ 제한을 풀자 했다가 얼마 후 “주 4일 근무 국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오락가락 행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대표로서는 억울할 수 있다. 전자는 당장 산업 현장에서 급하다니 일부에 한해 유연한 적용을 하자는 것이고, 후자는 국가 비전을 말한 것이니 모순은 아니라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근로기준법 취지를 생각하면 전자도 후자도 다 문제다.

비록 소수지만 지금도 주 4.5일제, 주 4일제를 시행하는 기업들이 있다. 인재 영입을 위해, 퇴사율을 낮추기 위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등등 다양한 이유에서다. 이는 근로기준법 기준보다 노동조건을 높이는 것이므로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국가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최저선보다 못한 노동이다.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 지난해 5월 과로사한 쿠팡 퀵플렉스 배송기사 정슬기씨가 배송 독촉에 답한 문자 내용이다. 정씨는 사망할 때까지 주당 평균 63시간을, 그것도 밤을 꼬박 새며 일했다. 겉으로만 개인사업자일 뿐 세세한 업무 지시를 받고, 스스로 일을 줄이거나 쉴 자유가 없는 이런 노동이 물류 현장에서는 너무 흔하다.

“소도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밭 갈지 않잖아요?” 한 화물기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하루 한두 시간 쪽잠 자며 주 7일 일해야 겨우 고정비용을 제한 수입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그는 쉬어가며 일한 건 3년 전 ‘안전운임제’가 있던 시절뿐이라 했다. 이 제도는 2020년 화물기사들의 졸음운전과 과속, 하청 다단계 문제 개선을 위해 도입됐지만 2년 후 일몰제 적용으로 폐지될 때 정부도 정치권도 이를 막지 못했다.

‘주 최대 52시간’ 제한도 5인 미만 사업장엔 면제되는데, 이렇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까지 합쳐 보면 사실상 한국은 노동시간 최저선이 없는 나라다. ‘개나 소’처럼 일하게 방치되는 나라인 것이다. 여기에 ‘주 4일제’를 도입하면 어떻게 될까? 노동 양극화는 더 극심해질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주 4일제’를 말할 상황이 아니다. 시기상조라는 뜻이 아니다. 최저선 이하 노동이 이렇게 많은데 최저선을 더 올리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 정치인이 ‘짧은 노동’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는 건 반갑지만, 정치와 법이 해야 할 역할부터 정리하고 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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