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관 산업 종사자 20여만 명, 매출액 20조원, 사업체 3만5000개, 지난해 사상 처음 30억 달러어치(약 4조원) 수출 기록을 세운 산업은 어디일까. 바로 수산업이다. 수산업은 우리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책임지고 국가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풀뿌리 산업이다. 수산물은 미래에 지속가능한 식품으로 주목받는 ‘블루 푸드’인데, 한국은 1인당 수산물 섭취량이 연간 약 70?이나 되는 수산물 소비량 세계 1위 국가다.
수온 급등, 어획량 급감해 타격
손해 봐도 울며 겨자먹기식 감척
낡은 규제 손질로 해법 제시해야
하지만 우리 수산업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해양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로 생업을 포기하는 어업인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한때 연간 160만t에 이르던 어획량은 100만t 이하로 줄었다. 최근 90만t 선으로 감소할 정도로 부진한 어획량을 좀처럼 만회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가장 많이 섭취하는 오징어·갈치·삼치·참조기 등 대중성 어종 모두 어획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수산물 물가가 크게 상승하는 ‘피시(fish) 플레이션’ 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온 상황이다.
필자가 조합장으로 있는 대형기선저인망수협은 대형쌍끌이·대형외끌이·대형트롤 등 3개 업종의 어업인들이 소속해 있다. 국내 단위 수협 중에 가장 큰 규모인 136척이 가입해 있다. 오징어·갈치 등 대중성 어종을 어획하는데, 그 규모는 국내 전체 어획량의 약 8%다. 하지만 모든 수산업계가 그렇듯이 우리 조합 소속 근해 어업인들도 지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류비 및 각종 경비 급등, 기후위기에 따른 수온 상승 문제 등으로 어업 환경이 어려워져 파산하는 선사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내년 감척 수요 조사에서 조합 소속 어선의 절반이 넘는 76척이 감척 의사를 밝혔다.
정부의 감척 지원금이 현실 가액보다 터무니없이 부족한데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렇게 많은 어선을 감척하려 한다면 그만큼 사정이 어렵다는 의미다. 수산업에 종사한 지 40여 년이 지난 필자의 마음은 아쉬움을 넘어 한탄스럽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하고 반복되는 것일까. 그 원인은 현행 수산업법에 있다. 우리 대형 근해어선들은 대형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산업법에 명시된 조업 구역 관련 규제를 많이 받는다. 다른 어선들과 비교하면 훨씬 좁은 조업구역에서 어획해야 하니 어려움이 크다.
하지만 현행 수산업법은 1953년에 제정된 이후 70여 년이 넘은 낡은 법이다. 그동안 기후변화 등 여러 이유로 해역별 어장과 잡히는 어종이 크게 바뀌었는데도, 수산업법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70년 전에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종 규제가 매년 추가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여름 고수온으로 피해가 발생했지만, 복구와 지원 대책은 양식업에 한정됐을 뿐이다. 정부도 수협도 어선 어업인들에 대한 대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다 보니 결국 감척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까지 왔다.
우리 조합은 수산업법만 탓하며 뒷짐 지고 있지는 않았다. 기후변화로 어장이 변하면서 동해 한·일 중간수역 최동단 해역에서 자원 조사를 위한 시험어업을 조합 자체 예산까지 편성해 정부에 건의했다. 하지만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 해역은 국내 연근해 어선들이 들어가 조업하지 않는 곳이어서 정부는 동해 어업인들과의 갈등을 내세워 해법 찾는데 소극적이다.
우리는 중국 어선들이 조업 가능한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한시적 조업 허용, 조업 강도가 비슷한 대형쌍끌이와 대형트롤 업종의 제주도 조업구역 금지선 일원화, 대형외끌이 업종의 조업 금지구역 내 한시적 조업 허용 등을 건의했다. 하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현장의 어업인들이 직접 나서서 고군분투하지만, 낡은 수산업법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세세한 규정보다 연근해 어선의 조업 구역을 정확히 나눠서 가능한 조업구역을 확보하고, 꽉 막힌 수산업법에서 탈피해 과감한 변화가 절실하다.
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고 근해 어업인들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제는 벼랑 끝까지 왔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께 되묻고 싶다. 도대체 우리 근해어업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루속히 현실적 해결책을 알려달라고 간절히 호소드린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정훈 대형기선저인망수협 조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