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초 일본에서 임기 종료를 앞두고 귀국을 준비하면서, 그 당시 관계하고 있던 유럽 연구 학회에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통합(Anglo-Scottish Union)을 연구 과제로 해보자고 제의한 일이 있었다. 그해가 마침 영국과 스코틀랜드 통합의 3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러나 물론 이 주제의 연구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단순히 이런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주지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영국(England)과 스코틀랜드는 민족과 언어, 종교 등이 모두 다른 나라였다. 그러나 같은 섬나라에 살고 있는 관계로 때로는 통합이 됐다가 다시 분열되기도 했고, 때로는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북, “통일 필요 없다”며 적대시
남, 일각에선 통일 무용론 나와
다양한 정체성 유지한 채 함께하는
‘통일’ 대신 ‘통합’을 하면 어떨까

17세기 초 엘리자베스 1세가 본인의 사후 후계자로 사촌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를 지명해 통합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통합이 이루어진 것은 18세기 초였는데, 이 통합은 상류 지배계층 사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일반 민중 사이에선 반발도 있었다. 아직도 스코틀랜드의 분리를 주장하는 사람과 독립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스코틀랜드 민족주의 정당(Scottish National Party)도 존재한다. 영국과 스코틀랜드 사이 지역을 여전히 “국경(Anglo-Scottish Border)”이라 부른다. 그러나 내가 앞서 말한 연구를 제의한 것은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이런 역사적 사실을 다시 살펴보자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즈음 이미 본국에선 바로 눈앞까지 온 것 같았던 통일이 더 어려운 것이 돼 가고 있었고, 특히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통일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근대 세계에서 영국이 여러 면에서 유럽의 강국으로, 그리고 때로는 세계적인 패권 국가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 이 통합 없이 가능했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당시 유럽은 프랑스·스페인·스웨덴 등의 국가들이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수행하면서 근대적인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던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영국과 스코틀랜드가 통합된 국가(Britain)로 세상에 나서지 않았다면 과연 근대 국가들의 파란만장한 각축 과정에서 강국으로서의 지위와 역할은커녕 제대로 독립이나마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둘째로, 그나마 큰 어려움 없이 통합을 이루었다는 영국(Britain)의 경우도 통합 과정상 어려움이 많았고, 통합 이후에도 반발 세력이 만만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래 끝없이 지속되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내가 제의한 연구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해 이 두 가지 문제를 먼 나라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한때 통일이 매우 가까운 앞날에 이뤄지는 것 같은 생각을 한 때도 있었다. 마른하늘에 벼락처럼 갑작스럽게 닥친 분단에 어리둥절했기 때문이었을까? 역사상 강대국들이 자기들의 이해에 따라 약소국을 나눈 일들은 흔히 있었다. 그러나 수천 년을 이어 온 같은 나라를 일직선으로 나누어 버린 일은 그때까지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제국의 영토를 분할한, 악명 높은 사이크스-피코(Sykes-Picot) 밀약도 일직선은 아니었다. 38선은 지역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천과 강을, 마을과 도로를 그리고 철도를 한 개의 직선으로 갈라놓은 것이었다. 한국인들은 당연히 이 분단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황당하고 답답한 만큼 통일은 내일이라도 당장 있어야 했다. 이어 일어난 전쟁에서 남북 양측이 모두 나름대로 통일이 바로 눈앞에 있어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을 것같이 느끼는 순간들도 있었다.
통일은 멀기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마치 무지개처럼.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매년 듣는 훈화가 있었다. “올해도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새해에는 반드시 통일을 이룰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기가 바뀌면서 정말로 통일이 가까워오는가 희망을 품은 때도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그렇게도 민족을 강조하고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던 북이 이제는 우리가 같은 민족도 아니고 통일도 필요 없다는 주장을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에 호응하듯 남쪽에서도 통일은 필요 없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통일은 우리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18세기 영국의 경우보다 한층 더 우리가 통일이 절실한 민족이다. 통일 혹은 통일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없으면 우리는 영구히 주변 강대국의 관여에 눈치 보며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일부분이라도 다른 나라의 일부로 편입될 수도 있다. 통일과 같은 전망과 목표가 없는 민족이라면 더 쉽게 일상의 안락과 평범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단지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한다.
오래전부터 나는 ‘하나로 되는’ 통일(Unification)이라는 용어에 관해 패권적인 개념이 아닌가 하는 유보적인 생각을 해 왔다. 그보다 각기 여러 가지의 정체성을 지닌 채 함께할 수 있는 ‘통합(Union, Integration)’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그리고 통일이 위대한 지도자들의 업적으로 위로부터 이루어지는 정치적 기획이 아니라 사람의 삶의 질과 도덕적인 수준의 고양, 그리고 개개인의 선택의 폭을 확장해 주는 기획으로 추진되는 ‘인간적인 기획(human agenda)’이어야 한다. 그래서 통일부를 ‘민족복지부’로 개명하자고 제안한 일도 있었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