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로 수시·정시 칸막이 허물어질 것"

2025-03-04

4일 개학과 함께 전국 고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생처럼 과목을 골라 수업을 듣고 학점을 따는 고교학점제가 시행됐다. 앞서 교육 당국은 올해 고교 신입생부터 적용될 2028학년 대학 입시 개편안을 2023년 말 확정·발표했다. 새 입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선택과목 전면 폐지와 내신 5단계 상대평가로 요약된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설계한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를 지난달 30일 연구실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고교학점제가 ‘문재인표 교육정책’이라는 세간의 오해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고교학점제는 진영 논리와 무관하게 일관되게 추진돼온 사안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스타트를 끊었을 뿐이지 김영삼 정부 시절의 ‘5·31 교육개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당시 한국개발연구원 소속으로 5·31 작업에 참여했는데, 현 정부가 전 정부 정책을 수용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이름만 다를 뿐 진지하게 검토했어요.”

김 교수는 2028학년도 대입 개편에 대해 “방향성을 잃은 채 ‘대증요법’에 그쳤다”고 평가했다. 그는 “학생들이 다양한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하려면 절대평가가 전제돼야 하는데 돌연 상대평가로 전환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9등급을 5단계로 줄였지만 취지대로 굴러갈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더 우려되는 것은 고교학점제와 대학 입시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수능 출제 범위를 1~2학년(주로 1학년) 때 배우는 공통과목으로 한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자연·이공계 대학은 1학년 과정의 통합과학 외에도 과학 관련 선택과목의 학업 역량도 보고 싶어 할 텐데 수능에서 볼 길이 없죠. 적어도 상위권 대학에서는 수능의 타당성, 다시 말해 변별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수능도 학종도 상위권 대학 변별력 확보 못 해

김 교수는 사교육비 문제의 뿌리도 교육과정과 입시 제도의 불일치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교육과정과 입시는 떼려야 뗄 수 없는데도 1994년 수능 도입 이후 교실 따로, 입시 따로 제각각 움직였다”면서 “학력고사 시절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게 가능했지만 30년간 교육 현장과 입시가 엇박자를 내는 사이 그 간격을 파고든 사교육 시장만 배 불렸다”고 비판했다.

교육계의 관심사는 고교학점제하에서 대학들이 어떻게 학생을 선발할 것인가다. 김 교수는 수시 전형과 정시 전형의 칸막이가 점차 허물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시에 내신 또는 학생부를 반영하고 반대로 수시에서는 수능 점수를 반영할 것이라는 의미다. 김 교수는 “서울대가 2023학년부터 정시 전형에서 학생부를 대학 처음으로 반영한 것도 고교학점제 시행에 대비한 것”이라며 “점차 정시에서 수시 요소 비중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주요 대학은 물론 N수생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의대에서도 정시에서 학종 요소를 가미하고 있다.

반대로 수시에서 수능 반영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예상이다. 학종의 뼈대인 학생부는 상향 평준화가 이뤄져 유의미한 변별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내신만 반영하는 교과 전형은 설 땅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내신을 포기하고 수능에 올인하는 것은 좋은 선택지가 못 된다”며 “수시든 정시든 상위권 대학을 겨냥한다면 내신 만점은 필수”라고 말했다.

정시 40% 룰, 의대 증원, ‘N수생’ 폭증 양대 주범

김 교수는 ‘앞으로 수능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시 40% 룰이 건재하는 한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정시 40% 룰을 만든 것은 학종 불신에 따른 여론 무마용으로 시계추를 거꾸로 돌린 것”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이 조치를 현 정부의 의대 증원과 더불어 N수생 폭증의 주범으로 꼽았다. 그는 “정시 40% 룰은 법적 근거도 없고 정시의 수시화와 수시의 정시화로 인해 더 붙잡아둘 명분도 없다”면서 “교육 당국은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수능의 논·서술형 전환, 또는 절대평가 전환에 대해 김 교수는 “전제 조건부터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교육부에서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에 대해 자문을 구하더군요. ‘고교의 내신 절대평가가 먼저 이뤄져야 하고 수시와 정시가 통합된 후에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는데 정부가 시안을 덜컥 발표하더니 결국 백지화됐죠. 50년간 이어진 줄 세우기 관성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수능의 논·서술형 전환 역시 고교의 평가 방식 변화가 선행돼야 합니다. 최소 5년 정도 해봐야 해요.”

인터뷰 말미에 바람직한 입시 제도에 대해 묻자 김 교수는 “모두가 만족할 제도는 없다”면서 조심스럽게 지론을 피력했다. “원칙은 교육과 입시의 일치이고 그러자면 수시·정시 통합이 첫 단추입니다. 수능을 어떻게 바꿀지는 그다음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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