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본질에 소홀한 대가

2024-10-25

[정보통신신문=서유덕기자]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쳐 송구합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수장인 전영현 DS부문장은 3분기 잠정실적 발표일인 지난 8일에 이례적인 메시지를 냈다. 저조한 분기 실적으로 확산하는 삼성전자 위기설을 의식한 듯, 그는 재도약을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인공지능(AI) 고도화를 계기로 활기를 띠는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며 고전하고 있다. 경쟁사가 AI 메모리 호황을 톡톡히 누리는 것과 대조된다.

업계에서는 신시장 진입 지연과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삼성전자의 부족한 고대역메모리(HBM) 기술력을 꼬집는다.

HBM은 AI를 뒷받침하는 차세대 핵심 메모리 반도체로 손꼽히는데, 삼성전자가 시장 선점을 위한 선제적 연구·개발(R&D)에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삼성전자의 최근 위기를 두고 다양한 원인 분석이 이뤄지고 있는데, 그런 분석들은 하나같이 기술자의 이탈과 경직된 조직문화를 지적한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40대 이상 직원 수가 20대 이하 직원 수를 처음으로 넘어섰다는 언론보도가 이달 초 이슈가 된 바 있다.

이런 단적인 사례를 통해서도 엿보이듯, 삼성전자의 사내 인력 고령화와 결부된 조직 경직화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여럿 나오고 있다.

한 내부 소식통은 “삼성전자의 신규 채용은 줄어왔고, 그에 비례해 혁신은 점점 사라졌다”며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제언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늘 하던 방식을 선호하는 태도가 팽배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인 모 스타트업 대표는 “기존 성공 경험에 물든 나머지 위험 요인을 지나치게 경계하고, 새 도전의 희열을 갈구하기보다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분위기”라면서 “회사 차원의 적극적인 R&D 지원을 바라던 기술자들은 의사결정 테이블에서 설 자리를 잃었고, 위험 회피에 능한 재무·회계 전문가들의 입김이 우세해졌다”고 진단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이번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영현 부회장은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 △미래에 대한 보다 철저히 준비 △조직문화 재건 및 투자자 소통 강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지적 사항들과 일맥상통한다.

전 부회장이 거론한 재도약의 성패는 인재 확보와 운용의 묘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원천 기술력 회복과 미래 준비는 우수 기술자 확보로 대응해야 하고, 신뢰와 소통의 조직문화 재건은 곧 실패를 두려워 않으며 도전을 장려하는 삼성의 본모습을 회복하는 데 해법이 있다.

더군다나 삼성전자는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먹거리로 삼는 기업이다. 그렇다면 그 기업의 경영상 핵심은 ICT 경쟁력을 얼마큼 확보하느냐가 돼야 함이 마땅하다. 과거의 영광에 물들어 현실에 안주하고 기술력 신장에 소홀한다면, 썩은 조직문화를 방치한다면 경쟁력을 잃고 구제불능이 돼버리는 게 ICT 업계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삼성을 창업한 고 이병철 회장은 “기업은 곧 사람이다”라는 명언을 통해 인재 확보와 운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R&D 인력의 대거 양성·채용과 진취적인 조직문화 확립, 그런 선진 경영 방침을 토대로 거리낌 없는 도전을 장려하며 혁신을 이어가는 게 삼성의 본질이었다. 지금의 삼성은 그런 본질을 잃느냐 회복하느냐의 기로에, 몰락과 재도약을 가르는 분수령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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