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층 쫓겨난 아들은 몰랐다…아빠 스스로 판 '3층의 무덤'

2024-11-23

삶은 때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싶을 때마다 어쩌면 정해진 운명, 팔자라는 게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신의 개입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을 때 말이다.

몇 년 전, 상조회사의 소개로 방문한 고독사 현장 이야기다. 고인에게는 부인과 성인이 된 자녀 둘이 있었다. 그는 지방국립대 법대를 졸업하고 나름 엘리트의 삶을 살았다. 온전히 자신만의 능력으로 목 좋은 곳에 4층짜리 건물도 세웠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꾸준한 운동으로 자기 관리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지금 시대야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다지만 고인의 세대만 하더라도 개천 용이 될 수 있었던 때였다. 그 시절에 부모 도움 없이 법대 입학과 건물주가 됐으니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는 고독사로 생을 마감했을까?

건물 사람들의 말을 통해 그의 가족 이야기를 얼핏 들을 수 있었다. 고인의 가족은 고인의 명의로 된 건물 3층과 4층에 거주하고 있었다. 3층에는 고인과 아내, 그리고 둘째 딸이 살았고, 4층에는 동사무소 공무원인 첫째 아들이 살았다고 한다. 한 건물 3, 4층에 살고 있으니 같이 사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온 세상 슬픔을 다 짊어진 듯한 남자가 계단을 올라왔다.

상조회사를 통해 고독사 청소를 의뢰한 첫째 아들이었다.

나를 마주한 아들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 내가 죽었어야 했다, 나 때문이라며 종잡을 수 없는 말을 쏟아냈다.

“아들을 미워했다니,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아닐까요?”

나는 의문을 넘기지 못하고 질문하고야 말았다.

“저는 늘 못난 자식이었어요. 아버지가 저를 보기 싫어하니, 저는 4층에 혼자 살았고요. 어머니가 계실 땐 종종 밥도 같이 먹었는데, 편찮으셔서 요양원에 들어가며 아버지와의 교류는 전혀 없었죠. 어머니 간병하러 동생도 집을 비웠고, 아버진 늘 혼자 계셨어요.”

부자는 손만 뻗으면 닿을 한지붕 아래에서 남처럼 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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