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둘이 살았는데 자주 구타를 당해서 가출했던 거로 기억해요. 거리에서 얕잡아 보이기 싫었던 거지. 팔부터 등까지 이레즈미(야쿠자 문신을 가리키는 일본어)를 그려놨더라고, 지우는 데 2년 정도 걸렸어요.”
지난 13일 만난 박재웅 원장(55)은 이 환자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몇 년 후 육군 중사가 돼서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군인이 되고 싶어했는데 문신에 발목이 잡혔었죠. 진짜 군인이 돼서 나타난 걸 보니 기특하기도 하고 나도 새삼 보람 같은 것도 느껴지고···”
박 원장은 지난 8일 여성가족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2010년부터 가정 밖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문신 제거 시술을 지원해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청소년 쉼터 등 보호기관에 기록이 존재하는 공식 대상자만 60명이다. 박 원장이 자체적으로 지원한 청소년들까지 합하면 100명이 넘는다. 이들을 보호하는 쉼터나 재단이 치료비 10분의 1 정도를 부담하는 형태로 박 원장은 재능기부를 한다.
“최신의 레이저 시술로도 피부 속 색소를 한 번에 제거할 수 없어요. 최소 10차례 이상 반복해야 합니다. 한번 시술한 뒤엔 피부의 회복을 위해 두 달 정도 휴식이 필요해요. 그래서 시술 기간이 보통 1년이 넘어가고 전신 문신 같은 경우 5년이 걸리는 예도 있어요. 시술에 수천만원이 드는 이유에요. 청소년들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 없죠.”
그가 지금까지 지운 문신은 1만개가 훨씬 넘는다. 2015년엔 세계 최초로 ‘문신제거’ 부문에서 국제 표준인 ISO 기술 인증을 획득했다. 피부과 병원들이 꺼리는 문신 제거 분야에 발을 들인 건 ‘돈이 될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15년 전쯤 수영장엘 갔는데 젊은 친구들이 문신을 많이 했더라고요. ‘문신 제거’가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을 했어요.”
곧바로 홍대 주변에 문신 제거 전문 병원을 차렸다. 그 주변에 문신업자들이 많다는 풍문을 들었다. 정작 개업 후 병원은 파리만 날렸다. 6개월간 개점 휴업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쉼터 측에서 찾아왔어요. 가정 밖 청소년들을 도와줄 수 있겠냐고요. ‘노느니 그냥 해주자’는 생각에 한두 명씩 해줬죠. 그게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제가 애들을 도와준 게 아니라 애들이 절 도와준 셈이죠. (재능 기부는) 일종의 보답이기도 합니다.”
그는 가정 밖 청소년들이 이른바 ‘가출팸’에서 만난 친구들의 권유나 강요로 또는 거리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즉흥적으로 문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렇게 새긴 문신은 아이들이 학교나 사회로 돌아오려 할 때 발목을 잡곤 한다고 했다.
“문신이 있으면 경찰, 군인 등 공무원도 못 하고, 국가대표 선수도 못 하고, 대기업 같은 데에서도 안 받아주거든요. 예술계 학교 중에는 문신했다는 이유로 자퇴를 시키는 일도 있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의 학교나 지망하는 직장에 ‘문신 제거 시술을 받는 중’이라는 확인서를 써주기도 해요.”
건강상 위협도 무시 못 한다고 했다. “10대들 90%는 아마추어 업자에게 시술을 받아요. 부모가 ‘문신하라’고 돈을 대 줄 리 없죠. 그래서 값싼 데를 찾는 거예요. 업자가 바늘을 돌려쓰는 바람에 감염이 발생해 시술 부위에서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런 ‘엉터리’ 문신들은 지우기가 더 어렵다고 했다. “어리니까 컬러 문신들도 많이 하는데 컬러 문신은 흑백 문신보다 지우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는 “‘문신은 개인의 자유이고, 문신이 아닌 문신에 대한 편견이 문제’라는 시각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런 편견을 당장 없앨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문신을 하면 평생 내가 불량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현실을 감당할 확신이 있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세상 경험이 적은 청소년들의 경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