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의 갑작스러운 암 발병은 환아는 물론 부모와 가족들에게 큰 심리적·경제적 고통을 겪게 합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인 만큼 우리 사회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후원을 해줬으면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평균적으로 매일 4명의 어린이들이 소아암 진단을 받는다. 지난달 기준 1만 2000여 명의 어린이들이 암이라는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신희영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이사장(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은 1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아암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후원이 절실하다”며 “다행히 기업과 기관들이 후원해주고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아를 돕고 있는데 일반인 후원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를 지내며 30년 이상 소아암 치료와 연구 분야에서 헌신한 신 이사장은 2021년 정년퇴직 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대어린이병원 어린이병원학교장으로 활동하며 강원대어린이병원에서는 진료도 보고 있다.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장과 대한적십자사 회장을 지낸 그는 지난해 12월 백혈병어린이재단의 3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1991년 설립된 백혈병어린이재단은 소아암 전문 지원 기관으로 치료비를 비롯해 환자와 가족의 심리·사회적 회복을 돕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신 이사장은 백혈병어린이재단 설립 초기부터 이사와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며 소아암 환자·가족을 위한 지원 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소아암의 종류는 백혈병을 비롯해 뇌종양·악성림프종·골육종 등 다양하지만 백혈병이 40%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백혈병어린이재단은 모든 소아암에 대해 지원하지만 설립 당시 명칭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다.
신 이사장은 지금껏 소아암 환아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가족 간 불화를 지켜보는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발병이 확인되면 아이의 아빠는 ‘엄마가 인스턴트만 먹이고 제대로 된 음식을 안 먹여 암이 생긴 것 아니냐’는 식으로 비난하고, 엄마는 ‘혹시 아빠 집안의 유전적인 영향 아니냐’는 식으로 맞서는 모습을 많이 봤다”면서 “소아암 발병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니 부모들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소아암과 성인 암의 큰 차이는 발병 원인이다. 성인 암은 흡연·음주·음식·생활환경 등이 주원인이지만 소아암은 어린이가 성장하는 중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신 이사장은 “아이가 태어나고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 몸에서는 많은 세포들이 수없이 분열을 반복하는데 그 과정에서 정상적이지 못한 세포분열로 인해 소아암이 발생한다”며 “어찌 보면 소아암 발병은 복불복이라고 볼 수 있어 그 누구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소아암과 성인 암의 또 다른 차이는 완치 확률이다. 성인 암은 발병 부위와 발견 시기 등에 따라 완치 가망성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소아암은 완치율이 86.5%라고 한다. 신 이사장은 “소아암은 완치율이 높으므로 발병 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다만 치료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국가·사회적인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까지 백혈병어린이재단에 모금된 후원액은 총 108억 원이며 이 가운데 기업·기관의 후원액이 약 77%를 차지한다. 신 이사장은 “다행히 기업과 기관들이 후원을 해주고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아를 돕고 있는데 일반인 후원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일반인들의 후원 참여 방법은 백혈병어린이재단 홈페이지에 안내돼 있다.
신 이사장은 후배 의사가 될 전공·수련의와 의대생을 향해서도 소아암 분야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현재 국내에 소아암을 진료하는 의사는 신 이사장을 포함해 60여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는 “1주일에 두 번씩 서울에서 춘천으로 진료하러 가는데 강원도에는 소아암을 전공한 의사가 한 명도 없기 때문”이라며 “보다 많은 의학도들이 소아암 연구·치료를 전공해 어리고 귀한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돼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신 이사장은 제약사와 정부에도 치료약 개발·출시와 약가 현실화를 당부했다. 그는 “소아암 관련 약품 가격이 낮아 제약사들이 수익성 때문에 약을 만들지 않으면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며 “제약사들이 혁신적인 신약을 만들고 정부는 적정한 약가를 책정해 소아암 환아들과 그 가족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