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옆 그늘은 칠흑같이 어둡다. 화려한 슈퍼스타의 우울과 고독을 담아낸 두 편의 전기 영화가 4월 극장가를 찾는다. <마리아>는 오페라 프리마돈나 마리아 칼라스를, <베러맨>은 보이밴드 출신 영국 록스타 로비 윌리엄스를 주인공으로 한다.
오페라와 팝. 장르적 차이만큼 두 영화의 분위기는 판이하다. 전자는 고상한 예술 영화 같고, 후자는 통통 튀는 화려함이 돋보이는 뮤지컬 영화다. 하지만 두 주인공 모두 ‘호랑이’나 ‘악동’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은 캐릭터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영화는 한때 구설의 중심에 섰던 슈퍼스타들의 연약한 내면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다.
■ 예술과 사랑을 위해 살았네···프리마돈나의 마지막 일주일, <마리아>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리마돈나 마리아 칼라스(1923∼1977)는 ‘오페라의 여신’이라고 불린 인물이다. 오는 16일 개봉을 앞둔 <마리아>(파블로 라라인 감독)는 칼라스의 죽기 전 마지막 일주일을 따라가며 끝에서부터 생애를 돌아본다. 관객이 제일 먼저 마주하는 것은 소프라노의 영광스러운 순간들이 아닌, 칼라스 역을 맡은 앤젤리나 졸리의 고집스럽고도 고독한 얼굴이다.
영화 속 칼라스는 대부분 시간을 충직한 집사와 시녀, 강아지 두 마리가 함께 사는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보낸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아함을 내뿜으며, 명령하는 것이 익숙한 말투로 말한다. 목 상태가 악화해 무대에 서지 않은 지 오래인 그는, 집에서 노래를 부른 뒤 시녀에게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극장에서 피아니스트와 노래 연습을 하는 것은 비밀리에 이뤄진다.
망가진 목으로 부르는 노래가 완벽했던 과거 젊은 칼라스의 무대와 교차하며 씁쓸함을 자아낸다. 졸리는 이 작품을 위해 7개월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한다. 제작진은 칼라스의 생전 목소리와 졸리의 목소리를 섞어서 각각의 노래를 완성했다. 푸치니 <토스카>의 ‘예술을 위해 살았노라,’ 베르디 <오텔로>의 ‘아베 마리아’ 등이 인상적이다.

영화 속 칼라스는 향정신성의약품 맨드락스에 의존하며 환각을 본다. 그가 맨드락스라는 이름의 방송국 기자에게 음악과 사랑에 얽힌 자신의 과거사를 들려주면서 영화가 전개된다.
칼라스가 구설의 중심에 선 것은 이미 결혼한 상태로 17살 연상 해운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 불륜을 시작하면서다. 두 사람은 10년 넘게 관계를 이어갔다. 칼라스는 오나시스와의 결혼을 바랐지만, 오나시스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사별한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한다.
언론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태도는 가십에 불을 붙였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서면 인터뷰에서 “오나시스도 성격이 강한 편이었지만 남자였기 때문에 용납이 됐다. 반면 칼라스는 여성이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시대에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는 지점에서 비난을 받았다”고 했다. 졸리는 칼라스의 이러한 강인함과 연약함을 우아하게 구현해 낸다.
■ 침팬지가 된 슈퍼스타의 자기혐오 극복기···<위대한 쇼맨> 감독 신작 <베러맨>

<위대한 쇼맨>으로 잘 알려진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의 신작 <베러맨>은 영국 보이밴드 테이크댓의 멤버였다가 1996년 솔로 가수로 전향한 로비 윌리엄스(51)의 일대기를 유년기부터 차례대로 그린다. 윌리엄스는 누적 앨범 판매량 8500만 장을 넘긴 영국의 국민 가수다.
독특한 것은 주인공 로비 캐릭터가 ‘침팬지’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레이시 감독은 윌리엄스 본인이 과거를 설명할 때 “뒤에서 침팬지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고 이야기한 데서 착안했다고 밝혔다. 배우 조노 데이비스의 연기를 모션 캡처하고, 윌리엄스의 목소리를 더빙해 침팬지 캐릭터를 완성했다.
영화 속 로비는 무대에서는 자신감의 화신인 척 굴지만, ‘너는 쓸모 없다’고 말하는 듯한 환각에 시달린다. 약물에 의존하게 되면서 그 증상은 더 심해진다. 그럴수록 더 슈퍼스타의 전형처럼 군다.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다른 여성들과 문란한 성생활을 벌이고, 방송에서는 건방을 떤다. 그야말로 ‘망나니’다. 이런 기행들이 침팬지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호불호가 갈릴 요소다.
<베러맨>은 윌리엄스가 오랜 자기혐오를 치유해내는 과정을 화려한 뮤지컬적 연출로 보여준다. 윌리엄스의 ‘Angels’ ‘Let Me Entertain You’ 등 솔로와 테이크댓의 노래까지 총 13곡이 OST에 포함됐다. 커리어의 정점에서 ‘나는 나다’라고 능청스레 말하는 침팬지의 모습은 긴 방황에 비해 급작스럽지만, 영화가 지닌 폭죽 터지는 축제와 같은 열기에 힘입어 얼렁뚱땅 이를 긍정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