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시장에 관심이 많지만, 신뢰할 만한 영문 자료가 부족합니다. 강남 일대를 둘러보면 공실이 상당한데, 여러 기관이 발표하는 공실률 자료는 서로 달라 어떤 수치를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워요.”
얼마전 부동산 투자 포럼에서 마주한 글로벌 투자 펀드 매니저가 토로했다. 그는 이미 싱가포르와 일본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지만 한국만큼은 신뢰할 만한 영문 정보 부족으로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단면이다.
부동산은 거대한 빙하다. 방대한 내부 정보는 단단히 얼어붙어 있다. 특히 한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정보 공유가 제한적이고, 국제 표준과 다른 관행이 많다. 그래서 외국인 투자자의 접근이 쉽지 않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데이터 기반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약 6200개 상업용 부동산의 임대, 매매, 개발 전 주기 데이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RA(알스퀘어애널리틱스)'와 같은 플랫폼이 예다. 이미 GIC, DWS, PAG 같은 글로벌 투자사들과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플랫폼의 진정한 가치는 기술과 사람의 조화에서 비롯된다. 수십 명의 현장 조사원이 정기적으로 빌딩을 방문하고, 수집한 생생한 정보가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된다. 순수 기술 접근으로는 불가능한 방식이다. 특히 권리금이나 재건축 이슈 같은 한국 특유의 부동산 관행은 현장 경험을 가진 전문가의 해석이 필수적이다.
주거용 부동산 시장도 변화의 물결 속에 있다. 24조원 규모의 아파트 관리비 시장은 아직 정보화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이를 위해 개발된 홈닷ERP 등 공동주택 관리 플랫폼은 검침, 부과, 회계부터 세무 컨설팅, 장기수선계획까지 관리사무소 업무를 체계화한다.
주차 관리, 커뮤니티센터 이용, 입주민 소통까지 스마트 기술로 연결하면 아파트는 단순한 '함께 사는 공간'에서 '함께 사는 방식'으로 탈바꿈한다. 흩어진 실들이 모여,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를 완성하는 과정이다.
부동산 등기 정보의 전산화도 주목할 만하다. '데이터허브'는 지도 기반 검색으로 특정 지역 일대의 부동산 정보를 한눈에 파악하고, 관심 부동산의 변동 사항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이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는 강력한 도구다.
어려운 경기 상황은 기업에게 시험대와 같다. 알스퀘어는 상업용 부동산 영역에서 자산관리, 물류, 건축 부문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첨단 역량을 강화한 기업들은 폭풍 속에서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해외 시장 진출도 중요한 성장 동력이다. 베트남과 같은 신흥 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더 크지만, 그만큼 데이터 기반 접근법으로 차별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현지화된 데이터와 네트워크는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위험을 효과적으로 낮춘다.
2025년은 부동산 산업의 기술 혁신이 본격화되는 원년이다. 특히 연내 출시 예정인 RA 영문 데이터 서비스는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시장 접근성을 높여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기여할 것이다.
안갯속 시장 경기에서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직감이나 경험만으로 판단할 시장이 아니다. 혼란스러운 미로다. 이를 헤쳐나가기 위해 정확한 지도와 최첨단 나침반이 필요하다. 본질에 집중하며 시장 위기를 돌파하는 동시에, 데이터와 정보통신기술(ICT) 경쟁력을 활용한 미래 사업에 투자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때다. 부동산 디지털 혁신의 진정한 의미다.
이용균 알스퀘어 대표·벤처기업협회 스타트업위원회장 ceo@rsquar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