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세이 ‘훌훌 훨훨’] Will you marry me? -해변의 프러포즈

2024-10-10

사진 몇 장이 톡으로 전송되어 왔다. 노을이 내려앉을 무렵 해변에서 한 청년이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하고 있고 바라보던 여인은 감격에 겨워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영화에서 많이 보던 아름다운 한 장면이다. 함께 적힌 메시지에 ‘이모, She said yes :)’ 그녀가 예스라고 말했어요, 라고 적혀 있다.

얼마 전 이민 2세대 미국에서 태어난 언니의 아들, 내게는 조카인 성훈이 그의 연인 마셀라를 데리고 한국에 여행을 왔다. 열흘간의 여정 중에 청혼 이벤트가 있었던 날이다. 한국말이 익숙하지가 않아 사진작가를 섭외하고 장소와 시간 예약을 도와주었는데 그는 내심 프러포즈를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나 보다. 프러포즈를 승낙받고 흥분된 마음이 그대로 전송되었다.

조카는 중학생 때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직장을 다니느라 한동안 한국에 올 수가 없었으니 십 년 세월을 훌쩍 넘겼다. 마지막으로 왔을 때는 한창 사춘기 시절이라 한국의 여러 가지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고 자신이 나고 자란 미국과 다르게 비교되는 한국을 그리 편하게 생각하지 않은 듯 보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아시아의 한 나라쯤으로 생각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지켜보는 나는 분명 성훈은 한국인인데 한국의 문화를 이질적으로 여기는 그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다만 자신은 태어나지도 살아보지도 못한 한국에 자신을 닮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그가 어떤 느낌일지는 궁금했지만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그가 성인이 되어 결혼할 사람과 함께 한국을 방문해 바닷가에서 프러포즈를 하고 그 감격적인 한순간이 담긴 사진을 바라보는데 과거의 날들이 떠올라 한동안 먹먹했다. 언니는 지금 조카 성훈의 나이에 결혼하고 곧장 미국으로 갔다. 형부가 이민 1세대 재미교포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가서 살게 된 형부는 방학이 되면 항상 한국을 방문해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한국을 오가다 언니를 만난 것이다. 미국은 지금처럼 자유롭게 잘 오갈 수 없는 먼먼 나라였는데 타국으로 딸을 보낸다는 사실이, 언니를 보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가족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공무원이었던 언니는 경직된 조직 생활에 지쳐있었고 때마침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먼 곳으로 간다니 그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민자의 힘겨움은 소설과 영화로도 많이 접해 그저 상상을 할 뿐이다. 고국을 떠나 억척스럽게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삶과 꿈을 그려낸 소설 파친코도 있고,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라며 미나리 씨를 들고 이민 온 자식들을 방문한 할머니가 그려진 영화 미나리도 있다.

다행히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있었던 형부 덕분에 언니의 미국 생활은 비교적 안정되게 시작하였지만 물질적인 기반 말고도 이민자가 겪어야 하는 일들은 아마도 다는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힘들 때 맘을 터놓고 지낼 만한 친구 한 명이 제대로 없었을 것이다. 한 번씩 고국의 가족들이 그리울 때마다 태평양 바다를 두고 한국을 바라보았다고 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의 국적을 가진 미국 사람이지만 엄마의 나라. 아빠의 나라, 할머니, 이모, 외삼촌이 있는 한국을 그리워한 마음이 기특해 한국에서의 여정을 잡을 때 무엇을 하면 좋을까 언니에게 조언을 구해놓았다. 그들은 여기저기 관광을 다니는 것보다 한국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다고 들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할머니를 면회할 때 몇 번 만나지 못해 서먹하면 어떨까 싶었지만 성훈은 할머니를 보자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인지장애로 자신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라도 병환 소식을 듣고 이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았던가. 한 세대가 저물고 다시 한 세대가 탄생한다. 결혼을 앞둔 이라면 스스로의 정체성과 뿌리를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되는 것이 본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은 이를 축원하는 등이 절 마당을 뒤덮은 바닷가 용궁사에서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는 절을 세 번 했다. 뒤에서 신기하게 바라보던 성훈은 내가 무엇을 염원하는지 알고 있었을까. 십이간지 석상 앞에서 태어난 해를 짚어 사진도 찍어주었다. 식지 않은 여름 열기가 남아 있었지만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옷가지를 부여잡고 찰칵찰칵 우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기록했다. 그렇게 며칠 할머니가 계신 부산을 떠나 경주에 도착했다. 가장 한국적인 풍광을 간직하고 있는 경주는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었다. 시작하는 연인의 앞날에 환한 빛이 가득하길 바라며 높고 전망이 좋은 곳에 잠자리를 예약해 주었다.

정오쯤 되면 그들을 픽업하러 호텔로 가서 함께 한두 군데 다녀보는 일정으로 채우고 해가 저물기 전 그들만의 시간을 위해 스케줄을 비워주었다. 해물과 매운 것을 잘 못 먹어서 음식 선택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한국 음식을 먹길 원했다. 미국에서 잘 먹지 못하는 메뉴를 골라 호기심에 가득한 얼굴로 먹을 땐 왠지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먹어볼 수 없는 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또 없었을까, 하고.

조카가 결혼하기로 결심한 그의 연인 마셀라도 이민 2세대다. 그녀의 부모님은 멕시코인인데 성훈과 똑같이 이방인으로 미국에서 나고 성장을 했다. 그녀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멕시코의 시골 마을에서 양봉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우린 그곳을 여행하기로 했다.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흔적을 함께 공유하고 짚어가는 것에 대해 반갑고 기특한 마음이다. 서로 같은 결을 가지고 있어서 안심도 된다. 마셀라는 여행 중 경주 박물관에서 본 신라 천년의 미소라고 불리는 수막새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마땅한 기념품이 없어 사주지 못했는데 그들에게 결혼 깜짝 선물로 보내면 어떨까, 그 미소를 따라 웃는다.

열흘간의 여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성훈에게 한국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서울 경복궁에서 찍은 한복 사진이 전송되었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어느 나라에 살던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살던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과 그들이 가진 뿌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치는 시간이 오면 그와 닮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한국은 언제라도 두 팔을 벌려 환대할 것이라는 믿음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훈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간 후 그간 나눈 대화 메시지를 다시 열어본다. 가장 많이 오간 말이 ‘이모 사랑해요’ ‘성훈 사랑해요’이다.

다시 먼 바다를 두고 우리는 서로, 벌써 그립다.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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