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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대통령의 탄핵 심판보다 반도체특별법 통과 여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의 지속 가능성, 상속세 완화 등 구체적인 경제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았다.”
최종구 국제금융협력 대사는 1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야가 경제 활성화에 힘을 모은다면, 한국 경제는 금새 비상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11~14일 홍콩ㆍ싱가포르에서 한국경제설명회를 열고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와 블랙록·핌코 등 해외 투자자들을 만나고 왔다. 계엄 사태 이후 정부 주도의 설명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최 대사는 “당초 생각과 달리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았다”며 “(정치 불안이) 오래 가지만 않는다면 대외신인도나 신용등급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는 게 주요 신평사와 해외 투자자들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신평사들은 “한국이 헌법과 민주적 규범에 의거해 잘 대처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정치적 교착 상태가 재정 상황 악화로 이어진 다른 국가들과는 다르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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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투자자의 관심은 정치보다 경제 현안에 쏠렸다. 최 대사는 “특히 상속세 이슈까지 파고드는 게 인상적이었다”며 “한국은 상속세가 높아서 기업 오너들이 주가 부양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 밸류업을 위해선 상속세를 인하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이에 최 대사는 “효율성과 형평성 중 무엇을 더 중시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해서 여야가 협의해야겠지만, 정부는 기본적으로 상속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답해줬다”고 설명했다.
밸류업 프로그램 이행 여부와 2단계 계획 준비 여부를 묻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최 대사는 “어떠한 정치적 상황 변화에도 불구하고 밸류업 프로그램은 그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답했다.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기준금리 향방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최 대사는 “한국은행이 2월에는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을까 싶다. 추경은 야당도 최상목 권한대행도 긍정적인 만큼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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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실효성·지속성에 대해선 해외에서도 의구심이 크다고 그는 전했다. 한 외국 금융사 관계자는 “철강 25% 등 관세를 무차별적으로 부과하는 게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안다”며 “미국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다시 조정(recalibrate)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신평사들은 미국의 관세 부과가 한국 경제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신용등급 변동 요인으로 보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대사는 신평사들에 “정부는 관세 부과 시나리오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 등 부가가치세를 운용하는 국가에도 ‘상호관세’를 적용하겠다고 밝히는 등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최 대사는 사견임을 전제로 “상호관세는 아직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며 “4월부터 부과한다고 했으니 앞으로 구체적인 얘기들이 나올 텐데, 미국의 주요 타깃인 유럽의 대응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할지 차차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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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해 12월 말, 경제특사 격인 국제금융협력 대사에 그를 임명했다. 12ㆍ3 비상계엄 이후 대외신인도 하락 우려가 커지고, 외국인들의 투자 심리가 위축되자 한국의 경제 상황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 대사는 금융위원장, 한국수출입은행장 등을 지낸 국제경제ㆍ금융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