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재판서 증거능력 잃은 ‘이정근 녹음파일’, 이전과 무엇이 달랐나

2025-01-11

‘2021년 더불어민주당 돈봉투 사건’으로 기소된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현 소나무당 대표)와 전·현직 민주당 의원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변수는 ‘이정근 녹음파일’이었다. 재판부는 송 대표 사건을 판결하면서 의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이전 법원 판결보다 더 면밀하게 녹음파일 제출 경위를 뜯어봤다. 재판부는 ‘녹음파일이 증거로 활용될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돈봉투 혐의에 죄를 물을 수 없다’고 최종 판단했다.

12일 송 대표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총 208쪽 중 84쪽을 ‘이정근 녹음파일’과 관련 증거들의 위법성을 따지는 데 할애했다. 재판부가 녹음파일에 대해 판단한 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녹음파일이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자발적인 의사로 검찰에 제출(임의제출)된 것인지 확인했다. 임의제출됐더라도 이 전 부총장과 무관한 사건의 증거로 활용될 수 있는지도 살펴봤다.

“돌로 깨서 휴대전화 버렸다”던 이정근, 4시간30분 만에 임의제출?

이 전 부총장은 자신의 알선수재 혐의 수사가 시작된 후 약 두 달간 과거 휴대전화의 행방을 모른다고 주장했다. 2022년 10월7일 오후 3시쯤 이 전 부총장은 “직접 돌로 휴대전화를 깨서 주변 음식물 쓰레기통에 나눠 버렸다”며 당시 상황을 몸소 재연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검찰 수사보고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은 이날 오후 7시20분쯤 돌연 임의제출 의사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전 부총장이 약 4시간30분 만에 태도를 바꿀 만한 배경이 있었는지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영상녹화물을 통해 당시 상황을 확인해봐도 검사가 휴대전화 제출을 설득하는 장면 등은 나오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이) 임의성 여부를 더 신중히 검토해야 했음에도 그런 흔적이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부총장은 증인으로 나와 “무서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검찰에 협조하게 됐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휴대전화 제출 과정에서 검찰의 강요가 없었는지는 해소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전 부총장이 자의로 휴대전화를 냈어도 알선수재 사건과 무관한 정보까지 제출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이 전자정보를 전부 제출하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전 부총장이 “(수사가) 장기화돼 지치는 마음에 선별을 포기하고자” 정보를 모두 제출하게 됐다고 봤다. 이 전 부총장은 법정에서 “나머지(알선수재와 무관한 정보)는 지치기도 해서 참관하지 않고 승인하겠다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검찰이 ‘수사가 완료되면 디지털 증거를 폐기해야 한다’는 대검찰청 예규를 지키지 않은 점도 걸림돌이 됐다. 재판부는 “알선수재 사건에서는 제출되지 않았던 것들을 토대로 아예 새로운 사건인 돈봉투 사건을 시작한 것”이라며 “절차적 권리 보장 없이 무관한 전자정보까지 압수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근 녹음파일’이 적법하다고 본 앞선 의원들 판결은 제출 과정보다 제출 당시 상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총장이 휴대전화 내 정보 중에서도 ‘녹음파일’과 ‘메시지 캡처 사진’을 콕 집어 전부 제출하겠다고 하면서 범위를 명확히 지정했다고 봤다. 추가 범행이 밝혀지더라도 임의제출한 내용이 증거로 사용되는 것에 동의했냐는 재판장 질문에 “예”라고 답한 점도 고려했다.

반면 송 대표 재판에서는 제출 맥락을 더 꼼꼼히 따졌다. 재판부는 구체적 판단을 설명하기에 앞서 “휴대전화처럼 정보가 방대한 물건은 ‘제출 임의성’에 의문이 없는지 더 엄격히 따져야 한다”는 전제를 세웠다. 또 202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를 인용해 “확인되지 않은 임의제출자의 의사를 수사기관이 함부로 추정해선 안 된다”고 적시했다. 이 전 부총장이 법정에서 임의제출 관련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했더라도 대답이 수동적·연쇄적이면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보기도 했다.

검찰은 송 대표 사건 선고 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항소 의지를 밝혔다. 향후 재판에서는 수사보고 외에 이 전 부총장의 임의제출 여부를 증명할 다른 수단이 있는지 입증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송 대표 선고 다음 날 진행된 민주당 의원들의 항소심 첫 공판기일에서 녹음파일 제출 당시 동행했던 교도관, 검사 등을 증인 신문할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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