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서비스 개념 넘어 '공연 일부'로서 역할
엔데믹 이후 프리쇼도 부활...'체험' '경험' 갈증 반영
‘프리쇼’(Pre-show)는 본 공연의 분위기를 예열하고,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이는 숨겨진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뮤지컬 장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일종의 ‘공연 전 팬서비스’의 개념을 넘어서 프리쇼 역시 ‘공연의 일부’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프리쇼가 본격적으로 시도된 건 2010년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뮤지컬 ‘원스’는 2015년 초연 당시, 공연 전이나 인터미션에 관객을 무대에 올려 배우들과 함께 프리쇼를 즐기도록 하고, 음료도 사서 마실 수 있도록 했다. 10년 만에 재연으로, 현재 예술의전당에 다시 올려진 공연에서도 마찬가지다.
초연 당시만 하더라도 프리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었고, 일부 실험적 작품이나 해외 라이선스 작품을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선보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주로 본 공연의 주요 넘버를 짧게 선보이거나, 배우들이 간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형태였던 터라 관객을 직접 무대에 올려 외국의 한 술집 손님이 돼 연주를 즐기고, 음료까지 마시는 행위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시간이 흐르면서 프리쇼는 점차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고, 관객들의 반응 또한 긍정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공연 시작 전의 지루함을 달래는 것을 넘어, 작품의 주제나 분위기를 미리 전달하고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이는 전략적인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2020년 이후,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프리쇼가 관객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 데에는 ‘액터 뮤지션’ 형식의 뮤지컬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배우들이 연기뿐만 아니라 악기 연주까지 직접 선보이는 형식은 자연스럽게 공연 시작 전 배우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관객과 소통하는 프리쇼로 이어지기 용이한 수단이 된 셈이다. ‘원스’를 비롯해 ‘조로:액터뮤지션’ ‘그레이트 코멧’ 등이 대표적 사례다.
다만 수요가 높아지던 차에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프리쇼 역시 자취를 감췄다. 관객들은 마스크를 쓰고, 좌석 간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프리쇼는 불필요하거나 위험한 요소로 여겨졌다. 하지만 2022년 이후, 방역 수칙이 완화되고 공연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면서 프리쇼 또한 화려하게 부활했다.

오히려 팬데믹을 겪으면서 공연에 대한 관객들의 갈증이 더욱 커졌고, 프리쇼는 본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극대화하고 현장감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최근에는 더욱 다채로운 아이디어와 완성도 높은 연출을 통해 관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프리쇼들이 늘어나고 있다.
‘원스’ 황현정 협력안무는 “10년 전에도 ‘원스’를 했는데 당시만 해도 낯설고 어색해하던 관객들이 많았다. 당시는 객석에서 ‘쟤네 뭐야’ 하는 공연이었다면 지금 프리쇼에는 배우들보다 즐기는 관객들이 많다”면서 “저희는 맨 뒷자리에서 모니터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배우, 관객들이 많은 성장을 이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원스’ 외에도 화려하고 역동적인 분위기의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역시 공연 시작 전부터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관객들과 소통하는 프리쇼를 통해 공연의 열기를 고조시켜 19세기 러시아 사교계의 파티에 초대된 듯한 몰입감을 준다. 강렬하고 매혹적인 뮤지컬 ‘물랑루즈!’는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자유롭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클럽 ‘물랑루즈’의 화려한 분위기를 미리 선보여 실제 물랑루즈에 온 듯한 생생한 경험을 제공한다. 배우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 역시 공연 시작 전 배우들이 악기 연주를 선보이며 극의 음악적 특징을 미리 보여주는 프리쇼를 선보였다.
프리쇼가 홍보 효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뮤지컬 ‘룰렛’은 공연 시작 전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룰렛 게임 참여를 유도하는 프리쇼를 통해 극의 긴장감을 미리 조성하고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단순히 공연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공연 시작 전부터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작품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프리쇼는 단순히 공연 전의 이벤트라기 보다 공연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관객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험’의 충족을 위한 새로운 마케팅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뮤지컬 시장엔 더 다양하고 창의적인 프리쇼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기술의 발전을 활용한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을 통해 작품의 세계관을 공연 시작 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시도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