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배출국’을 넘어서려면

2025-11-25

페이페이 리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는 2006년부터 꽃, 개, 자동차 등의 이미지 수천만장을 수집하고 라벨링해 ‘이미지넷’이라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그는 2010년부터 수천만장의 이미지를 어떤 시스템이 잘 인식하는지 겨루는 ‘이미지넷 챌린지(ILSVRC)’를 열었는데, 2012년 3회 대회에서 딥러닝 기반의 AI인 ‘알렉스넷’이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했다.

알렉스넷을 만든 건 당시 제프리 힌튼 교수가 이끄는 캐나다 토론토대팀이었는데 중국의 바이두, 미국의 구글·마이크로소프트, 영국의 딥 마인드가 이 팀을 영입하려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영미권 기업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 기업이 일찌감치 AI 경쟁에 끼어든 게 놀라울 정도인데, 사실 바이두는 AI 분야 석학인 앤드루 응을 수석 과학자 겸 부사장으로 영입할 정도로 AI에 진심이었다.

이미지넷 구축부터 지금까지의 AI 발전에 기여한 이들을 배출한 국가는 어떤 곳일까. 케이드 메츠 뉴욕타임스 IT 전문기자가 지난 60년간 진행된 AI의 결정적 장면들에 관해 서술한 을 보니, 북미(미국·캐나다), 중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정도다. 이 책에는 한국인이 딱 한 명 등장하는데, 알파고와 겨룬 ‘이세돌 9단’이다.

이후 한국은 어째서 ‘알파고 효과’를 누리지 못했을까. 왜 AI 분야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하지 못했을까. AI 분야 석·박사들과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만나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카이스트 박사 과정 연구원은 H100 같은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가 없어서 이를 보유한 외국 대학과 협업했다가 결국 연구를 중도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로봇에 들어가는 AI 모델을 연구한 스타트업은 AI 모델의 학습을 위해 주변에서 활용 가능한 H100을 “박박 긁어모았다”고 했다.

엔비디아가 한국 정부에 약속한 고성능 GPU 26만장이 국내에 들어오면, 적어도 GPU가 없어 연구를 포기하는 일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AI 3강(强)’은 GPU 보유만으로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대학, 연구소, 기업 등이 긴밀하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GPU 자원과 성과를 공유하고, 오픈소스 세계에 일정 부문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생태계를 만들지 못한다면? GPU를 26만장이나 갖고 있어도, 마냥 ‘이세돌 배출국’에 머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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